관용과 종교적 자유, 종교 일치
관용은 ‘다른 믿음을 가진 자를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시작한다. 비신앙인과 신앙인을 같은 관심을 갖고 대하도록 가르치는 경전의 구절을 여기에 모았다. 종교적 논쟁이나 교리적 갈등은 비난할만하다. 그들은 종종 경건으로 위장한 이기주의의 충동을 받아 자신의 신앙에 맞지 않는 것에 적대감을 드러낸다.
이를 확대하면 정부는 종교 자유를 인정하고 신앙 문제에 강제성을 띠지 않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 자유를 현대 민주주의의 유일한 특징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이것은 십자군 전쟁, 종교 재판, 30년 전쟁 등등 전쟁의 잔혹성으로 점철된 오랜 기간의 종교적 편협에서 태동된 것이다. 일부 문명에는 종교적 관용의 시기가 있었다.
관용적인 불교신자였던 아쇼카 왕(기원전 3세기)치하의 인도, 무갈 제국의 계몽 황제 아크바(16세기), 알-안달루스(무슬림 치하의 스페인, 10세기), 그리고 중국의 송 왕조시대(10-13세기)등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 자유가 지구적 가치로 확고히 자리 잡은 것은 민주주의가 확립되면서였다. 문선명 선생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가장 어렵게 성취한 승리의 하나가 종교 자유를 확립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종교 사이의 화해와 연대는 종교의 관용과 종교 자유를 넘어선 보다 높은 비전이다. 인류가 세계의 여러 종교와 더욱 친밀해지고, 종교 지도자들이 대화를 통해 분쟁과 과거의 편견을 없애려고 노력한 결과, 이러한 현대적 비전이 태동한 것이다.
바하이교는 오래 전부터 종교간 일치를 주장해 왔다. 유대인 대학살의 공포를 겪은 후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의 관계가 변화하면서 반유대주의적 요소가 들어있는 기독교 교리에 대해 광범위한 재평가가 이행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까지도 세속주의 경향이나 종교적 편협이 언젠가 종교를 과거의 유물로 남게 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견해이다. 종교적 극단주의와 테러리즘이 급속히 번지면서 인류는 세계평화의 구현을 위해서 종교간 협력이 필수적 전제조건임을 깊이 각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선명 선생은 종교 일치가 하나님 섭리의 주요한 목표 중 하나라는 신념 아래 50년 이상 조금도 과시하지 않고 묵묵히 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진력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