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른 종교인에 대한 관용
종교 경전
자신의 교의를 찬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교의들을 깔보는 자들은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
수트라 크리탕가 1.1.50 (자이나교)
가장 좋은 것이(좋은 언어와 예절) 아니라면 성서의 백성(유대인, 기독교도)들과 논쟁하지 마라.
꾸란 29.46 (이슬람)
여러분은 이방 사람 가운데서 행실을 바르게 하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들이 여러분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욕을 하다가도, 여러분의 바른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찾아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12 (기독교)
우리의 스승들은 이렇게 가르치셨다. “이스라엘의 가난한 자뿐만 아니라 이교도의 가난한 자들도 도와라. 이스라엘의 병자만 아니라 이교도의 병자에게도 찾아가라. 이스라엘인의 주검만 아니라 이교도의 주검도 같이 묻어주어라. 평화의 이름으로.”
탈무드, 기틴 61a (유대교)
카파티카가 여쭈었다. “현자는 어떻게 진리를 견지합니까?” 붓다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믿음을 지녔을 때, 만일 그가 ‘이것은 나의 믿음이다’라고 말한다면, 그때까지 그는 진리를 견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오직 이것만이 진리이며, 그 외에는 모두 거짓’이라는 절대적인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맛지마 니카야 2.176 (불교)
여러 꽃에서 꿀을 모으는 벌처럼, 지혜로운 자는 여러 경전들에서 그 정수를 받아들이며, 모든 종교에서 단지 장점만 본다.
스리마드 바가바탐 11.3 (힌두교)
마치 성서에 근거한 듯 주 하나님이 유대인을 버리시고 저주하셨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교리문답을 하는데 있어 그들은 복음과 그리스도의 성령의 진리에 반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아가 모든 인간에 대한 핍박을 반대하는 입장에 있는 가톨릭교회는 유대인과 같은 조상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음을 인정한다. 정치적 이유가 아닌 복음의 영적 사랑에 근거해서 우리는 언제 어느 곳에서 행해지는 유대인을 향한 증오와 핍박, 반유대주의 표현을 비난하는 바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
말씀 선집
참부모의 이상과 세계평화의 이상은 직결되어 있습니다. 모든 국가와 민족과 문화와 종교들이 서로 백퍼센트 이상 위하고 관용하면서 화합함으로써 세계평화를 이룩해야 합니다.
(205-159, 1990.08.16)
하나님은 어떤 교리로 생활하는 분이 아니며, 종교 의식이나 형식에 얽매인 분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살아 있는 영적 존재로서 우주의 창조자입니다. 종교는 전 인류에 대해 올바른 가르침의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같은 종교 내의 쟁의에 의한 교파간의 투쟁이나 타종교간의 투쟁을 바라보실 때 하나님의 심정은 가장 고통스럽습니다.
본인은 두 개의 일치화 운동으로서 뉴 에라(New Era)와 하나님회의를 창설하고 이들을 통하여 기독교 내의 교파간은 물론 타종교간의 조화와 통일에 대한 가능성과 필요성을 시도해 본 결과, 이러한 조화와 통일은 인내와 희생, 그리고 참사랑의 값진 결실로서 실현된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각 종교간 진지한 대화와 조화를 실현함으로써 지상에 하나님의 뜻을 촉진하고 세계평화를 실현코자 본인은 세계종교의회와 세계종교회합을 설립하였는데, 현재 이러한 기구들은 정체된 종교계에 기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청소년들의 인종분쟁 및 종교전쟁을 막고 하나님의 이름 아래 이상적 평화세계를 세우는 데 적극 기여할 기구를 설립하였는데, 세계청소년회의와 청소년종교봉사단이 그것입니다. 본인은 이러한 모든 기구를 통하여 종교계에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167-99, 1987.06.30)
하나 되기 위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든 종교에 대해서 하나 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길이 있다면, 교리상으로 모든 것을 풀어서 설득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던가, 그렇지 않으면 참는 힘이 많아 가지고 관용심이 많아 가지고 그 종교와 하나 되기 위해서 양보하고 나가던가 하는 두 길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103-126, 1979.02.18)
종교를 중심삼고 볼 때 세계가 필요로 하는 종교는 어떠한 종교냐? 보다 평화를 제시할 수 있는 종교입니다. 그러한 종교가 되는 것은 자기를 중요시하고, 또 자기 중심삼은 소유관념이나 소유욕을 가지고는 불가능합니다. 그것은 그냥 그대로, 역사시대에 자기들의 조국을 중심삼고 자기 민족을 중심삼은 주체적 관념에 지배받던 그런 형태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것을 벗어나게 하려고 ‘자기를 희생시켜라! 자기를 희생시켜야만 된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세계의 역사를 따라가게 될 때는 전쟁역사 자체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것을 아는 하늘은 ‘자기를 희생시켜라! 자기를 부정해라’ 한 것입니다. 또한 자기가 주체의 자리에 서더라도 주체의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길을 택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희생을 강조하고, 봉사를 강조하고,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길을 찾아 나가는 것이 종교의 길이더라 이겁니다.
(172-143~144, 1988.01.10)
하나님은 세계를 구하려고 하지 장로교면 장로교, 감리교면 감리교, 성결교면 성결교 그것 하나만을 구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장로교만을 위주로 하는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세계를 위하는 하나님입니다. 교회가 참되려면 ‘세계를 위해서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살리기 위해서는 그 교회가 망하게 되더라도 희생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그렇게 가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텐데, 교회를 중심삼고 세계를 심판하면서 ‘우리 아니면 안 된다’고 부정하고 ‘우리들을 위하라’고 하면서 자기를 절대시하는 교회는 망합니다.
(69-87, 1973.10.20)
하나님이 이 시대를 경륜하기 위하여 바라시는 종교는 ‘부모 위치에 있는 종교’입니다. 부모의 심정을 품고 사는 종교를 요구하십니다. 본인은 참부모 사상을 교육하고 각자가 그 전통을 닮은 참부모들이 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선 가정에서 참부모가 되고 종족에서 참부모가 되는 종족적 메시아 사명을 다 하도록 지도하고 있습니다. 참부모의 심정을 품은 교인, 참부모의 심정을 실천하는 종교가 되어야 갈등과 증오와 죄악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다른 종교나 교파를 경멸하고 적대시하는 종교는 세계평화 실현에도 하나님의 섭리에도 유용하지 않습니다.
천운은 조화된 평화세계를 지향합니다. 그런데도 현실은 어떠합니까? 냉전시대가 종식되었으면서도 아직 극복해야 할 대결과 분쟁의 소지는 너무도 많습니다. 인종간 분쟁, 종교간 갈등 등의 근본을 해결해서 인류 한 형제, 세계일가의 화합시대를 이루어야 하는 과제는 참부모주의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260-128, 1994.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