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종교 공동체와 종교 사이의 유대
종교 경전
내게는 이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우리 안으로 인도해야 하겠다. 그리하면 그 양들도 내 음성을 듣고 마침내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 10.16 (기독교)
나의 집은 뭇 백성이 모여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리라.
이사야 56.7 (기독교)
나는 오래 전에 모든 종교는 참되며 또한 그 속에 어떤 오류를 지닌다고 결론짓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 자신의 종교를 굳게 지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교들을 힌두교처럼 존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힌두교인이라면 기독교인은 힌두교인이 되어야 한다고 기도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가장 내밀한 기도는 힌두교인은 보다 훌륭한 힌두교인이 되고, 무슬림은 보다 훌륭한 무슬림이 되며, 기독교인은 보다 훌륭한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고 기도해야 합니다.
모한다스 K. 간디
근본적으로 세계의 모든 주요 종교들은 동일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므로 다양한 종교의 조화는 중요하며 또한 필수적이다. 각 전통은 다른 성향과 정신체계를 지닌 사람들에게 적합한 가치를 지닌다.
편리한 의사전달이 발달한 이 시대에 우리는 상호 종교전통을 배우려고 더욱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모든 종교를 하나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양한 종교의 공통 목적을 인정해야 하며, 각 종교들이 내적 진전을 위하여 축적해온 다양한 기법들을 존중해야 한다.
텐진 가초, 제 14대 달라이라마
가톨릭교회는 하늘 자녀들을 위한 권고의 가르침을 갖고 있다. 교회는 신중과 애정을 담아, 다른 종교 신앙인들과 대화와 협력을 통해, 또한 그리스도 신앙과 삶의 증거자로서 타종교인의 사회 문화의 가치와 그들의 도덕적, 영적 선을 인정하고 보존하며 장려하는 바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
하나님의 종교의 본질적인 목적은 인류를 통일하는 것이라. 성스러운 현시가 연대와 사랑의 매체의 시조였다. 그들은 불화, 분쟁, 증오를 만들려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종교는 사랑의 동기이나, 만약 증오와 살육의 원인이 되도록 만들어졌다면, 분명히 그것의 부재가 존재하는 것보다 나으리라. 왜냐하면 그 후 그것은 인간 세상에 흉악하고 해롭고 방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
이 찬란한 세기에 우리의 의무는 성스러운 종교의 본질을 연구하는 것이고, 세계 인류가 하나 되는데 기초가 되는 실재를 찾는 것이며, 신성한 사랑의 끈으로 인류를 연합시킬 연대와 화합의 원천을 발견해 내는 일이다. 이러한 통일이 영원의 광채이고, 거룩한 영성이며, 하나님의 광휘이고, 왕국의 선물이다.
압둘 바하, 세계평화의 반포
말씀 선집
본인이 알고 있는 신은 종파주의자가 아니십니다. 지엽적인 교리이론에 얽매이신 신이 아니십니다. 우리들은 교의문자나 의식조건에 융통성 없이 얽매이는 신학적 갈등으로부터 빨리 벗어나서 신과 산 교제를 가져야 합니다. 신도들의 믿음이 생동하고 각자의 영혼이 신과 교통하는 순수한 종교 풍토의 조성이 시급하다고 봅니다.
신과 부모의 심정, 그리고 크신 사랑 안에는 민족이나 혈색의 구분이 있을 수 없습니다. 국가나 문화 전통이나 동서양의 벽도 없습니다. 신께서는 오늘도 만민을 같은 자녀로 품기 위해 애쓰고 계십니다. 우리는 종단간의 대화와 화합을 통하여 신의 창조목적이요 인류공망(人類共望)인 단일평화이상세계를 기어이 실현해야 합니다.
(135-221, 1985.11.16)
오늘날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수많은 기독교파들 사이에서, 여러 세계 종교들 사이에서, 그리고 각 세계 종교 내부에서 빚어지고 있는 상호 몰이해의 현상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종교 공동체들 간의 대립과 적대감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수세기 동안에 벌어졌던 종교전쟁은 오늘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상호일치를 위한 수많은 운동들이 시도되어 왔으나, 독실한 신앙자들 사이에는 아직도 불관용, 종교적 편협 및 종교적 교만의 풍조가 팽배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종교들이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심지어 같은 교리를 갖고 있는 경우가 빈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인들은 상호 탄압과 적대행위를 계속해 왔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교단주의나 교리나 파당주의를 초월해 계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언제나 전 인류를 구원하시는 데 있어 왔고, 특정 민족이나 인종이나 종교단체만을 구원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으며, 이것은 지금 이 시간에도 변함이 없습니다.
종교인으로서 우리가 상호간 싸움과 적대행위를 종식시키지 않는다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이것을 절감하여 왔으나, 여러 복잡한 이유 때문에 이 문제의 해결은 번번이 좌절되어 왔습니다.
본인이 강조해 온 것은, 세계평화를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 바로 종교간 화목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어느 한 종교가 하나님을 완전하게 대변하는 일은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종교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견해들은 필연적인 산물입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한 하늘 부모의 자녀들인 연고로, 우리는 한 대가족 안의 형제자매들인 것이며, 따라서 종교간 갈등과 증오는 불필요한 것들입니다.
(133-274, 1984.08.13)
하나님이 세계하고 전부 다 격리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를 구하려고 합니다. 회회교를 보더라도 말이에요, 무슬림을 중심삼고 자기들 중심삼고 하자 그러는 것입니다. 세계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교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회에 나가서 활동하는 것을 지금까지 안 해 왔습니다.
(99-17, 1978.08.27)
유대교의 이스라엘을 중심삼고 중동에 있는 나라들이 가인 아벨로 하나 되었다면, 벌써 6세기 전부터 인도와 중국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종교가 있었기 때문에 중앙지대를 중심삼고 통일해 자동적으로 하나 될 수 있는 환경을 다 만들어 놓았었습니다.
유대교와 이스라엘 나라가 하나 되었더라면 그때는 이미 로마가 부패한 상태였기 때문에 중동이나 어디나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로마제국의 판도 내에 인도니 중국이니 이 종교 권들이 영계에서 하나 되라는 지시만 있으면 한꺼번에 다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힌두교의 나라가 아니고, 유대교의 나라가 아니고, 기독교의 나라가 아니고, 하나의 나라입니다!
(406-23, 2003.03.02)
동양에서는 무아경을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조용한 곳,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자리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아이고, 돈이 많고 무엇이 많은 데 가자!’이러고 있습니다. 서양식은 ‘있는데 가자. 많은 데 가자’고 해서 눈이 커진 것입니다. 눈이 이렇게 커졌습니다. 눈이 커져 가지고 ‘아이고 어서 가자, 어서 가자’ 한다는 것입니다.
또, 키가 커 가지고 이렇게 갑니다. 동양 사람은 작습니다. 눈도 작아지고 코도 작아지고 다 작아졌습니다. 다리도 짧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게 어디가 안이고 어디가 밖이냐? 서양은 밖이고 동양은 안이라는 것입니다.
(118-47, 1982.05.02)
종교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종교의 목적은 하나의 세계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종교에서 믿는 신은 이름이 여러 가지이며 표현이 다르지만, 그 종교에서 신봉하는 중심존재는 하나의 신에 귀일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게 될 때, 그 종교가 가르치는 방향과 목적은 언제나 하나를 표준으로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후에는 모든 종교가 자기 나름의 길을 수습해 가지고 일대 하나의 변혁시대를 맞이해야 됩니다.
(140-10~11, 1986.02.01)
‘하나님 아래 하나의 세계’는 하나님의 영원, 불변, 절대의 소원이요 목적이니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나 그것은 먼저 종교 통일을 하고야 가능한 것입니다. 한 아버지인 하나님을 모시고 한 메시아 밑에 하나님주의로 굳게 결속하면 하나님이 같이 하실 것인즉 세계복귀, 즉 지상천국 구현은 시간문제입니다.
(88-211, 1976.09.18)
오늘날 수많은 종교들이 주장하던 세계적인 사조도 지나가 버리고, 최후에 남아질 것은 재림주로 오시는 신랑을 중심삼고 신부들이 만나는, 그런 새로운 세계적 문화권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그 세계는 언어도 통일이요, 생활도 통일이요, 행동도 통일이요, 소원도 통일이요, 심정도 통일된 시대가 온다는 것입니다.
(50-62, 1971.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