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랑으로 합일된 하나님과 인간
종교 경전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이르시길 “내 종복은 내가 그에게 부여한 의무 이상으로 나에게 다가오지 말지라. 그럼에도 내가 그를 사랑하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는 여전히 필요 이상의 공덕을 나에게 바치도다. 내가 그를 사랑할 때, 나는 그가 듣는 청각이 되고, 그가 보는 시각이 되고, 그가 두드리는 손이 되고, 그가 걷는 다리가 되리라”
알 나와위 하디스 40선 38 (이슬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로마서 8.35, 38-39 (기독교)
“저들을 바라보아라. 자비라는 예복을 걸쳐 입고, 참된 미덕으로 장식한 저 모습을 보아라. 그들은 사랑으로 ‘나’와 일치되었다. 그들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말씀’이 답하셨다, “그들은 또 다른 ‘나’이니라; 자기를 잃고 자기를 부정하고 내 것으로 옷을 입고 나와 하나 되고 나에게 순응한 그들이기에 그들은 또 다른 ‘나’이니라.”
시에나의 카테리네
말씀 선집
완전한 통일은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에 의해서 되는 것입니다.
(94-263, 1977.10.01)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꽉 찬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전부가 충만하기 때문에 모든 것에 기쁨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95-39, 1977.09.11)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냐?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줄을 누가 끊을 것이냐’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도 하나님의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무엇보다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은 생명의 원천이요, 행복의 원천이요, 평화의 원천입니다. 여러분이 영적 체험을 해보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24-325, 1969.09.14)
만약 이 축이 연결됐더라면 인간과 하나님은 사랑으로 일체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일체된 관계는 그 무엇이 작용을 해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지할 수 없습니다.
처녀 총각들이 청춘기, 사춘기가 되어 연애하고 사랑을 하게 되면 죽자 사자 하는 요사스런 문제를 일으키지요? 그렇게 서로 붙들고 죽음 길을 자처해서 가거늘, 하나님의 본연의 사랑의 줄에 매여 그 사랑의 맛을 본 사람이 갈라질 것 같아요?
여러분, 봄에 벌이 꿀맛을 처음 보는데, 이 꿀맛을 처음 본 벌은, 그 꿀맛을 본 벌은 꽁무니를 잡아당겨 꽁무니가 쭉 뽑아져도 안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맛을 느낀다면 어디를 가요? 가다가도 되돌아와서, 또 거기에 가서 붙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137-57, 1985.12.18)
사랑만이 모든 것을 수습할 수 있는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이상적 수직선을 소유할 수 있는 특권이 있는 걸 알아야 됩니다. 사랑은 소유권이 있고, 사랑은 동위권이 있고, 사랑은 동참권이 있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이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될 때, 하나님이 내 안에 있고 내가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이 내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이 내 것이요, 하나님의 천주가 내 것이라는 소유 관념을 가진 당당한 그런 가치적 존재가 나이기 때문에 여러분 각자는 자기를 천하에 자랑하고 싶은 이런 욕망의 본성은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179-169, 1988.08.01)
역사적인 서러움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심정을 체휼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어느 곳에 머물든지 하나님의 눈물 없이는 바라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한 입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분의 아들딸이 되기 위하여 싸우게 될 때 그와 뜻을 같이하는 동지가 있다면 하나님은 그 자리에 찾아오셔서 눈물을 흘리실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서러움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의 일신에 있는 동시에 이 나라, 이 세계, 이 만물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청산 짓고 하나님의 기쁨을 복귀해 드리는 운동을 전개해야 되겠습니다. 그러한 우리에 있어서 생명의 중심이 무엇이냐 하면 하나님의 서러움을 체휼하는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하여 눈물짓는 생활을 하게 될 때,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을 감지하고 하나님의 대신자의 사명을 다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심정에 사무쳐 사는 사람에게는 기도가 필요 없습니다. 신앙이라는 명사도 필요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심정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러분은 천륜의 슬픔을 체휼하고 만물의 탄식을 밟고 올라서서 하나님의 사정을 직접적으로 통할 수 있는 참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한 사람이 있다면 겉으로는 망할 것 같지만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천대받고 쫓김 받더라도 그런 사람에게는 반드시 후계자가 나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남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누구에 대해서 원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분들을 위해 흘린 눈물을 통하여 탕감의 혜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남보다 먼저 하나님의 서러움을 체휼하며 눈물 흘릴 수 있는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이 여러분을 위해 먼저 눈물을 흘리셨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여러분은 그 모든 사람들이 식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4-60~63, 1958.03.02)
아버지! 하늘과의 참다운 심정적인 관계가 이 자리에서 맺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아오니, 당신의 손길로 친히 저희들을 붙들어 주시옵고, 아버지의 양팔로 저희들을 당신의 사랑의 품에 품어 주시옵소서. 얼마나 고대하시고 소원하셨던 일이었습니까? 이제 그 심정을 가히 짐작할 수 있사옵고, 그 애달픔을 가히 짐작할 수 있사옵니다.
(9-160~161, 1960.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