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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정의

어느 사회든 실제의 차원에서 빈부격차가 유지하는 한 정의사회로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한 차이는 시민의 유대 결속을 약화시키고 계급차별과 그에 따른 편견을 야기하게 된다.

더구나 빈자보다 부자가 모든 이점을 누리는 사회에서 기회균등과 법 앞의 평등은 허상에 불과하다. 오늘날까지 인류의 지성인들은 정치적 민주주의에 따른 경제적 민주주의를 탐구했다. 다양한 유형의 사회주의가 인간 본심에 의한 항구적 욕망에 부응하여 나타났다.

경제적 정의는 도둑질하지 말라는 계명으로부터 시작된다. 도둑의 유형에는 타인의 소유물을 훔치는 자들뿐만 아니라, 더 위험스러운 형태로서 공공의 수입원을 탈취하는 권력자들도 있다. 이런 이슈는 무엇이 ‘공적’ 인 것이며, 무엇이 ‘사적’ 인 것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출발한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지구, 공기와 물, 그리고 광물자원을 창조하였으며 이스라엘의 모든 땅은 인간을 청지기로 세우신 하나님에 귀속되었다. 이러한 관점은 자본주의의 사적 소유 개념에 도전하고, 정의로운 경제체제는 공유의 개념을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나님의 차원에서 볼 때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한 가족의 구성원이다. 그런데 자신의 형제자매가 배고파할 때 부자가 양심적으로 어떻게 잠잘 수 있을 것인가? 초기 기독교인들은 모든 소유를 공동체에 종속시켰다. 이것은 오늘날 유토피아를 지향하는 사회주의자의 실험을 통해서도 주장되어 왔다.
문선명 선생에 따르면 사회주의 성공의 열쇠는 자비심과 형제애의 원천인 하나님 사랑의 실천에 있다. 그것은 부자는 자신의 축복을 사회 전체와 공유하도록 자극할 수 있다. 그리하면 인류 사회에는 나눔과 공유라는 미덕의 라이프 사이클이 지속적으로 공전될 수 있을 것이다. (제13장 '자선' 참조)

한편, 공산주의는 부자의 것을 갈취해 빈자에게 분배하는 사회제도를 설정하고 공동소유를 제도화하려고 시도했다. 공산주의는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폭력을 정당화하고 잔혹한 만행을 저지르면서 무산계급의 분노를 악용하였다.

문선명 선생은 공산주의는 이론 자체가 무신론적이며 종교에 적대적이기 때문에 이처럼 비열한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신다.

우리가 경제적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정책에 우선하여 우리 자신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개인적 이익을 위한 경제행위보다 인류 전체의 복리를 위한 경제행위에 주력해야 한다. 그것은 인류는 형제자매, 즉 하나님 가정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가족 구성원이 매달 예산을 세우고 수입과 지출을 결정하는 것처럼, 각 마을이나 이웃사람들이 공정과 평등의 증진을 위한 균형적 기반위에서 자발적으로 수입과 지출을 분류할 수도 있다.
나아가 기업 차원에서 고용주와 공장 소유자는 노동자들의 노력을 격려하고 인간 가치를 성찰하는 가운데 그들의 공동 생산물에 대한 적정한 임금을 대우해야 한다.
국가 가족이라는 측면에서 선진 국가는 지구상의 모든 인류는 동등한 생활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표 아래 개발도상국에 원조와 기술적 지원을 자발적으로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지지하면서 우리는 소유가치보다 남에게 베푸는 자비심을 터로 한 존재가치에 더 비중을 두고 인간 존중의 문화를 육성해야 한다. 문선명 선생은 이것이 경제 정의를 실현하는 실제적인 방법이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