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내 북마크

아직 북마크가 없습니다.

3. 영적 지혜의 결핍과 고도로 발달한 지식의 위험

종교 경전

여러분 가운데서 지혜 있고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한 사람은 착한 생활을 해서, 지혜에서 오는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여러분의 마음속에 지독한 시기심과 파당심이 있거든, 여러분은 헛되이 자랑하지 말고 진리를 거슬러 속이지 마십시오.

이것은 위에서 내려오는 지혜가 아니라 세속적이고 육욕적이고 악마적인 것입니다. 시기심과 파당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더러운 행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결하고, 다음으로 평화스럽고, 친절하고, 온순하고, 자비와 선한 열매가 풍성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야고보서 3.13-17 (기독교)

지식에는 거룩한 것과 사악한 것 두 종류가 있음을 진정 알지라. 하나는 거룩한 영감의 샘에서 솟아나오나, 다른 하나는 헛되고 모호한 사상의 반영일 뿐이라. 거룩한 지식의 근원은 하나님 자신이시며, 사악한 지식의 동인은 이기적인 욕심의 속삭임이라.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이 네게 가르쳐 주시리라”라는 원리에 의해 안내 된다.
다른 하나는 “지식은 인간과 그 창조주 사이의 가장 비통한 장막이다”라는 사실의 확인일 뿐이다. 거룩한 지식은 인내와 열망과 참된 이해의 결실과 사랑을 낳는 반면, 사악한 지식은 오만과 허영과 자만심만을 낳을 뿐이라.
키타브 이 이칸 69 (바하이교)

위에 있는 자가 진심으로 지혜만을 좋아하고 도를 알지 못한다면 세상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어째서 그러함을 아는가? 대체 활, 쇠뇌, 그물, 주살, 덫, 새를 잡는 올가미 등을 이용하는 지혜가 많아지자 새는 하늘 위에서 어지럽게 날게 되었다. 낚시, 미끼, 그물, 반두, 통발 등을 이용하는 지혜가 많아지자 물고기는 물속을 어지럽게 헤엄치게 되었다.
덫, 그물, 올가미, 토끼그물, 함정 등을 이용하는 지혜가 많아지자 짐승은 늪 속을 어지럽게 뛰어다니게 되었다. 지혜, 거짓, 비방, 원한, 위선, 교활, 견백(堅白)의 궤변, 논쟁, 동이(同異)의 궤변 등이 많아지자 세상의 습속은 그 변론에 현혹되게 되었다. 그러므로 천하는 언제나 큰 혼란에 빠지는데 그 죄는 지혜를 좋아하는 데 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은 모두 그 알지 못하는 일을 추구할 줄은 알면서도 그가 이미 알고 있는 일을 추구할 줄 모른다. 모두 그가 좋지 않게 여기는 일을 비난할 줄은 알면서도 그가 이미 좋다고 생각한 일을 비난할 줄 모른다. 그러므로 세상은 크게 혼란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위로는 해와 달의 밝음을 가리고 아래로는 산과 강의 정기를 소멸시키며 가운데로는 4계절의 변화를 무너뜨렸다.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는 벌레에서부터 퍼덕거리며 날아다니는 새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그 본성을 잃고 만다. 지혜를 좋아한다는 것이 이토록 천하를 혼란하게 하다니 참으로 심하도다!
장자 10 (도교)

지혜 없이 사랑한다면 사람을 사랑하지만 분별이 없어진다. 지혜롭지만 사랑하지 않으면 분별력이 있으나 실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인류를 사랑하는 유형이고 지혜란 인류의 재해를 제거하는 유형이다.
동중서 (董仲舒)

직관적인 마음은 신성한 선물이고 이성적인 마음은 신실한 하인이다. 우리는 하인을 영예롭게 하고 선물은 잊어버린 사회를 창조했다.
알베르 아인슈타인
과학과 지혜는 별개다. 과학은 사람이 어린이들처럼 그것을 가지고 놀 때 그들의 손가락을 다치게 되는 날선 도구이다.
아서 에딩턴
원자의 폭발력은 우리의 사고양식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미증유의 파국을 향해 떠내려가고 있다.
알베르 아인슈타인

말씀 선집

우리는 오늘날의 제 과학과 철학들이 세계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해 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겠습니다. 자연과학이 해온 위대한 약속들은 번번이 악한 방향으로 쓰여 졌고, 인류의 참된 행복만을 위해서 쓰이지 못했습니다.
사회과학 분야도 이기적이고 당파적인 정권들의 영향 하에 너무 부패되어서 많은 경우에 역기능을 발휘하여 왔습니다. 철학 역시 선이나 인간의 궁극적 이상을 향한 위대한 추구를 포기해버린, 생명을 잃은 학문이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학자들의 무기력과 소극적 자세로 말미암아 더욱 심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학자들은 연구 업적만으로 만족하지 말고 적극적인 지도를 요하는 세계의 요청에 응해야 한다고 봅니다. 세계는 바른 가치관에 의해서 주체역량을 행사하는 학자들의 책임성 있는 실천을 요구합니다.
(170-269~270, 1987.11.27)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창조목적에 부합하는 명확한 가치관을 가지고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원래 거대한 가치관을 소유해 온 창조물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그 가치관을 무시하고 과학의 만능 성을 믿고 그것을 만병의 약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과학기술은 점점 공해를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과학은 인간생활에 있어서 단순한 수단이며 목적일 수 없습니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실현하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영과 육의 결합체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육적 생명을 바탕으로 해서 가치 있는 인생, 곧 사랑과 진리와 선과 미의 생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편의적으로 말하자면 과학기술은 영적 생활에 부합되고 육적 생활에 필요한 것입니다.

따라서 가치 있는 생활을 강조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과학은 도리어 가치관의 파괴를 가져오며 오늘날과 같은 공포와 불안의 현실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 불안한 현실에서 인간을 구하는 것은 진정한 가치관을 추구하고 발견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과학은 말할 것도 없이 절대가치에 기인한 이 가치관에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절대가치는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에서만 찾을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한 진리와 선과 미가 곧 절대가치입니다. 결국 과학기술의 악용에 따르는 피해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은 과학 자체가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같은 방향에 그 기술을 응용할 때에 가능합니다.
(106-53, 1979.11.23)

케임브리지에 갔더니 옛날 고전 서적이 몇 만권 있다고 자랑하고 그래서 그걸 공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나 하고 가만히 보니, 공부하는 사람은 없더라는 것입니다. 지키는 사람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건 무엇을 말하느냐 하면, 힘의 시대가 지나간 다음에는 지식이, 지식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지식적인 시대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전부 공부 잘하는 녀석이 출세하고 세계를 움직인다, 그렇게 생각했지요? 공부, 공부 그랬지요? 다음에는 요즘에 와서는 돈, 돈. 지식보다도 돈, 돈 합니다.
학자가 열심히 머리가 빠지도록 공부를 해도 월급이 적으니 노동자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학자 해서 뭘 하느냐 이렇게 돼 가는 것입니다. 돈이 세계를 지배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빠지도록 공부해서 뭘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돈 벌고 돈 많이 받으면 좋지,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지식의 시대가 지나가고 지금은 돈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사탄이 제일 원하는 세계입니다. 사탄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요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식도 그렇습니다. 세상 지식, 과학을 알다 보니 하나님에 대해 다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지금 철학이, 지식의 왕등골 같은 것이 철학이라면 철학이 전부 무신론이 되었고, 신학 자체도 하나님이 죽었다고 합니다.
종교는 머리와 같은데 하나님이 죽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죽었다고까지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 조상이 원숭이다. 하나님이 조상이 아니라 원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없고 원숭이가….
하나님이 조상인데 변해 가지고 원숭이가 조상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거 얼마나 떨어졌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님이 볼 때 ‘하하, 이거 좋구나!’ 그러게 했겠습니까? 그러니 방망이를 들고 ‘이놈의 힘아, 이놈의 지식아, 이놈의 물질아’ 하며 들이 때려 부수고 싶다는 것입니다.
(99.103-104, 1978.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