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교사의 권위가 아니라 자신의 포괄적 연구에 의해 이해하라
종교 경전
소문이나 전통 또는 권위에 의해서 오도되지 말아야 한다. 종교 경전들의 권위에 의해서, 단순한 논증이나 추론에 의해서, 현상들에 대한 숙고에 의해서, 또는 관념에 의해서 오도되지도 말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의 스승이다.” 그러나 그대가 어떤 것이 유해하고 그릇되며 악한 것임을 스스로 알 때, 그것을 버려라.… 그리고 그대가 어떤 것이 유익하고 선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따라야 한다.
앙굿타라 니카야 1.190-191 (불교)
지식의 탐구는 모든 무슬림에게 부과된 의무이니라.
이븐 마자흐 및 바이하키 하디스 (이슬람)
온 정력과 정신을 기울여 지극히 높으신 분의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옛 성현들의 지혜를 탐구하고 예언을 연구하는 데 자기 시간을 바친다. 그는 유명한 사람들의 말을 보전하고 비유의 깊은 뜻을 파고든다. 그는 격언의 숨은 뜻을 연구하고 난해한 비유를 푸는 데 흥미를 느낀다. 그는 벼슬에 올라 군주들을 섬기고 통치자들 사이에서 중책을 맡는다. 외국을 두루 여행하며 인간 사회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체험으로 안다.
집회서 39.1-4 (기독교)
궁리는 우물을 파는 것과 같다. 만일 우리가 지속적으로 판다면 우리는 맑은 물에 도달할 것이다. 처음에 그것은 진창이겠지만 점차적으로 파내면 자연스럽게 맑아질 것이다.
주희(朱熹)
나는 다양한 상반되는 의견들을 수집해서 진리 탐구의 한계점까지 자신들을 채찍질해 보라고 젊은 독자들에게 말해 주고 싶습니다. 그리하면 그들의 지혜가 탐구와 함께 정교화 될 것입니다. 의심을 통해 탐구가 시작되고, 탐구를 통해 진리를 앗아갈 수 있습니다.
피에르 아벨라르, 가톨릭 신부들의 다양한 관점에 대한 탐구
인생의 유익한 배움에서 가장 유용한 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을 배우지 않는 것이다.
안티스테네스 (헬레니즘)
자유롭게 사고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관습, 특권, 신념과 충돌하는 것을 이해하는 데에서 편견과 두려움이 없이 기꺼이 그들의 마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마음 상태는 흔하지 않지만 바른 사고를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그것이 없다면 토론은 무익한 것보다 더 나쁜 것이 된다.
레프 톨스토이 (휴머니즘)
말씀 선집
종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먼저 마음으로 믿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은 앎이 없이는 생길 수 없다.
(원리강론, 총서)
여러분은 자신에게 희미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 있다고 해서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확실한 진리에 의한 방향이 없이는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설사 누가 여러분에게 어떠한 새로운 사실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그냥 그대로 믿지 말고 반드시 여러분보다 아벨적인 사람과 의논해야 할 것입니다.
(3-212, 1957.11.01)
이제까지의 철학이나 종교가 많은 공헌을 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반면에 우리에게 너무나 많은 정신적인 짐을 지워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역사상에 왔다 간 모든 철인들과 성현들은 인생의 갈 길을 열어 주려고 각각 그 시대에 있어서 선구적인 개척의 길로 나섰던 것이었으나, 그들이 해 놓은 일들은 모두 오늘의 우리에게 더 무거운 짐이 되고 말았다.
이제 다시 냉철히 생각해 보자. 어느 철인이 우리의 고민을 풀어 주었으며, 어느 성현이 인생과 우주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여 우리의 갈 길을 뚜렷이 보여 주었던가? 그들이 제시한 주의와 사상이란 것은 도리어 우리들이 해결하고 가야 할 잡다한 회의와 수많은 과제들을 제기해 놓은 데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종교가 어둠 속에서 헤매던 그 시대의 많은 심령들에게 비쳐 주던 소생의 빛은,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어느덧 꺼져버리고, 이제는 타다 남은 희미한 불똥만이 그들의 잔해를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도록 지어졌다면, 하나님에 대한 무지야말로 우리 인생을 얼마나 비참한 길로 몰아내고 있는 것인가? 그러나 하나님의 실재성에 대하여는 성서를 보아도 명확히 알 도리가 없다. 하물며 하나님의 심정에 대해서랴.
(원리강론, 총서)
내가 이 길을 나설 때에도 ‘하나님 있습니까?’ 하고 끝까지 캐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확실히 알고 출발했습니다.
(13-201, 1964.03.15)
진리를 탐구하는 데 있어서 기성교회같이 성경만 보는 게 아닙니다. 얼마나 방대한 잼대로 재고, 얼만 들췄겠나 생각해 보십시오. 실험하는 사람이 혹시나 이것이 맞지 않을까 해서 얼마나 실험하고 갖다가 맞추고 하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진리, 원리를 찾아낸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선생님이 많이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93-69, 1977.05.01)
철부지한 선생님을 하늘이 가르쳐 줄게 뭐야? 하늘이 못 살게 얼마나 야단했겠느냐 이겁니다. 사랑은 직단거리를 통한다는 것과 우주의 근본은 부자의 관계라는 것, 그 두 가지밖에는 가르쳐 주지를 않았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다 풀어내야 됩니다.
그래서 원리의 세계, 부자의 관계, 부자는 세상에 핏줄을 가진 그 부자가 아닙니다. 새로운 근원에서부터 풀어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타락원리를 모르면 안 됩니다. 내가 근본을 다 밝혔습니다. 그것이 전부 우주의 법입니다. 천법입니다.
(376-315, 2002.04.29)
나는 성경을 볼 때 ‘이것이 무엇일까’ 하고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년, 2년, 3년이라도 정성들입니다. ‘아, 그것은 이렇게 된 것이구나’ 할 때까지 뿌리를 뽑는다는 것입니다.
(35-38~39, 1970.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