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주제에 대한 모든 측면의 탐구
종교 경전
군자는 두루 사랑하고 당파를 만들지 않으며, 소인은 당파를 만들고 두루 사랑하지 않는다.
논어 2.14 (유교)
나는 마하비라에 대한 좋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으며, 또한 카필라나 다른 스승들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나는 다만 참으로 이치에 닿은 설법을 받아들일 뿐이다.
하리바드라, 로크탓트바니르나야 38 (자이나교)
군자가 걱정할 일이 셋이 있다. 아직 못 들었을 때는 혹 듣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이미 들었으면 배우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이미 배웠으면 실천하지 못할 것을 걱정한다.
예기 18.2.2.20 (유교)
벤 조마는 말했다. 누가 현명한 자인가? 그는 모든 이로부터 배우는 사람이다. 이는 시편의 가르침과 같다. “나의 모든 스승들로부터 나는 지혜를 얻었노라.” [시편 119장 99절]
미슈나, 아보스 4.1 (유대교)
붓다께서 말씀하셨다. “어떤 견해에 집착한 나머지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열등한 것으로 얕보는 것, 이것을 지혜로운 자는 족쇄라고 부른다.”
숫타 니파타 798 (불교)
하나의 철학적인 의견을 이해하려면 다른 소견의 포괄적 학습을 통해 하라.
아차랑가 수트라 5.113 (자이나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나 자신의 종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공부하고자 한다.
모한다스 K. 간디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며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다.
알베르 아인슈타인, 내가 보는 세상
말씀 선집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수많은 스승들의 훌륭한 교훈을 전부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대학원을 나와 박사가 되어서라도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학자들의 모든 지식을 전부 다 자기의 것으로 흡수하여 그 종합적인 가치를 스스로의 생명 요소로 삼아서, 여기에 색다른 하나의 새로운 선의 실체로서 등장하는 입장에 서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계적인 학자가 될 수 있으며, 세계적인 사상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의 뜻을 이루어 나가는 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35-327~328, 1970.11.01)
여러 가지 연구 분야에서의 지식이라는 것은 서로가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데, 자칫하면 학자들은 자기 자신의 연구 분야에만 고착하는 경향을 가지기 쉽습니다. 극단적인 전문화는 그것을 추구하는 개인 이외의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사소한 의미만을 주는 지식을 마련하게 됩니다. 발견의 기쁨이라고 하는 것은 학자로 하여금 다른 분야의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전하고 싶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식이 피상적이고 불확실한 것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는 것을 기뻐할 줄 알아야 합니다. 종교인들은 특히 르네상스 이후 과학의 발전에 의해서 위협을 받아 왔습니다. 그렇지만 소위 종교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발전하는 지식과 과학기술에 대한 이해가 없다면, 과연 어떻게 기아와 질병, 노쇠와 불충분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겠습니까? 확실히 과학은 이와 같은 목적을 위해서 크게 공헌해 왔습니다.
한편 인간과 우주의 신비를 고찰하는 데 있어서, 종교와 과학은 두 가지가 다 영감과 논리와 관찰을 통해서 우주와 인류를 존재하게 한 그 원인을 설명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인간의 기원과 목적에 관한 그와 같은 고찰은 우리 인간이 어디까지나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게 계속되어 나왔는데, 그것은 또 우리의 그칠 줄 모르는 에너지 원(源)을 형성시켜 나오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의미에서 20세기의 우주학자와 생물학자들은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의 관심사에 관계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95-202~203, 1977.11.25)
지혜는 연구와 배움에 의하여 단계적으로 얻어지는 지식과는 달리 하나님의 축복인 영감에 의하여 얻어집니다. 인간의 사악하고 이기적인 마음을 따라가서는 영감이 개발될 수 없습니다. 지혜 중의 지혜는 하나님의 심정과 이상을 아는 것입니다.
(219-105~106, 1991.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