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내 북마크

아직 북마크가 없습니다.

1. 야곱과 에서의 경쟁

종교 경전

리브가가 아기를 낳지 못하였으므로 이삭은 여호와께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다. 여호와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는데, 뱃속에 든 두 아이가 서로 싸우므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어디 살겠는가!” 하면서 여호와께 까닭을 물으러 나갔다. 여호와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태에는 두 민족이 들어 있다. 태에서 나오기도 전에 두 부족으로 갈라졌는데, 한 부족이 다른 부족을 억누를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될 것이다.”
달이 차서 몸을 풀고 보니 쌍둥이였다. 선둥이는 살결이 붉은데다가 온 몸이 털투성이였다. 그래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다. 후둥이는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했다.
창세기 25.21-26 (기독교)

두 아들이 자라나, 에서는 날쌘 사냥꾼이 되어 들에서 살고, 야곱은 성질이 차분하여 천막에 머물러 살았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오는 고기에 맛을 들여 에서를 더 사랑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을 더 사랑하였다. 하루는 에서가 허기져 들에서 돌아와 보니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었다. 에서가 야곱에게 “배고파 죽겠다. 그 붉은 죽 좀 먹자” 하였다.

그의 이름을 에돔이라고도 부르는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 야곱이 형에게 당장 상속권을 팔라고 제안하자 에서는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상속권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였다. 그러나 야곱은 먼저 맹세부터 하라고 다그쳐 요구하였다. 에서는 맹세하고 장자의 상속권을 야곱에게 팔아넘겼다. 그리고 에서는 야곱에게서 떡과 불콩죽을 받아먹은 후에 일어나 나갔다. 이렇게 에서는 자기의 상속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창세기 25.27-34 (기독교)

이삭은 늙어 눈이 어두워졌다. 어느 날 그는 큰 아들 에서를 불렀다. “얘야!” “예, 어서 말씀하십시오,” “너도 보다시피 내가 늙어 언제 죽을지 모른다. 그러니 너는 사냥할 때 쓰는 화살 통과 활을 메고 들에 나가 사냥을 해다가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오너라. 내가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정성을 쏟아 너에게 복을 빌어 주리라.”
리브가는 이삭이 아들 에서에게 하는 이 말을 엿듣고는 에서가 사냥하러 들에 나간 틈을 타서 아들 야곱에게 귀띔해 주었다. “아버지가 네 형 에서에게 사냥 해다가 별미를 만들어 오라 하시면서,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것을 잡수시고 에서에게 복을 빌어주겠다고 하시더구나, 그러니 야곱아! 내 말을 잘 듣고 내가 하라는 대로 하여라. 양떼들한테 가서 살찐 염소 새끼 두 마리만 끌어 오너라.
내가 그것으로 아버지 구미에 맞게 잘 요리해 줄 터이니 그것을 아버지께 갖다드려라. 그러면 아버지가 잡수시고 세상을 뜨시기 전에 너에게 복을 빌어주실 것이다.”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에게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형 에서는 털이 많고 저는 이렇게 털이 없습니다. 아버님이 저를 만져 보시면 어떻게 합니까? 제가 아버님을 놀리기나 한 것처럼 되어 복은커녕 도리어 저주를 받을 것 아닙니까?”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야곱아, 네가 받을 저주는 내가 받으마. 너는 내가 하라는 대로 어서 가서 염소 새끼나 끌어 오너라.” 어머니의 말대로 야곱은 염소 새끼 둘을 어머니에게 끌고 왔다.
어머니는 남편 구미에 맞게 별미를 만들었다. 리브가는 집에 보관해 두었던 큰 아들 에서의 옷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을 꺼내어 작은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염소 새끼 가죽을 매끈한 손과 목에 감아준 다음, 장만해 놓은 별미와 구운 빵을 아들 야곱의 손에 들려주었다. 야곱은 아버지한테 들어가 “아버지!” 하고 불렀다. 아버지 이삭이 “오냐, 네가 누구냐?” 하고 묻자 야곱이 대답하였다.
“저는 아버님의 맏아들 에서입니다. 아버님 분부대로 요리를 만들어 왔습니다. 어서 일어나 앉으셔서 제가 사냥 해다가 만든 요리를 잡수시고 복을 빌어 주십시오.” 이삭이 아들에게 물었다. “에서야! 무슨 수로 이렇게 빨리 잡아왔느냐?” “아버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짐승을 금방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이삭은 “네가 정말 내 아들 에서인지 만져보아야겠다.” 하면서 가까이 오라고 하였다. 가까이 온 야곱을 만져보고 이삭은 중얼거렸다. “말소리는 야곱의 소린데 손은 에서의 손이라!” 그는 야곱의 손에 형 에서의 손처럼 털이 많았으므로 야곱인 줄 모르고 그에게 복을 빌어 주기로 하였다. 이삭은 “네가 틀림없는 내 아들 에서냐?” 하고 다짐하였다.
야곱이 “예,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이삭은 “에서야! 사냥한 것을 이리 가져오너라. 내가 먹고 정성을 쏟아 너에게 복을 빌어 주리라” 하였다. 야곱이 가져다 바치는 요리와 술을 먹고 마신 뒤 아버지 이삭은 야곱에게 “에서야. 이리 가까이 와서 나에게 입을 맞추어 다오” 하였다. 그가 가까이 가서 입을 맞추자 이삭은 야곱이 입은 옷에서 풍기는 냄새를 맡고 복을 빌어주었다.
“아! 내 아들에게서 풍기는 냄새, 여호와께 복을 받은 들 향기로구나.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리신 이슬로 땅이 기름져 오곡이 풍성하고 술이 넘쳐나라. 뭇 백성은 너를 섬기고 뭇 족속들은 네 앞에 엎드리리라. 너는 네 겨레의 영도자가 되어 네 동기들이 네 앞에 엎드리리라.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에게 복을 빌어주는 사람은 복을 받으리라.”…
에서는 아버지가 야곱에게 복을 빌어준 일로 야곱을 미워하였다. 에서는 속으로 ‘아버지 상을 입을 날도 멀리 않았으니, 그 때 동생 야곱을 없애버리리라’ 하고 마음먹었다. 리브가는 큰 아들 에서가 한 말을 전해 듣고는 작은아들 야곱을 불러놓고 일렀다. “큰일 났다. 형 에서가 너를 죽이지 않고는 속이 풀리지 않을 모양이다. 그러니 야곱아!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곧 하란으로 몸을 피해 라반 아저씨를 찾아가거라. 네 형의 분이 풀릴 때까지 잠시 외삼촌댁에 가 있으라.”
창세기 27.1-29, 41-44 (기독교)

말씀 선집

본래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축복과 사랑을 세우는 데 있어서는 장자여야 되는 것입니다. 차자가 하나님의 뜻을 상속받게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면, 장자의 자리에 사탄의 아들이 먼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차자의 자리에서 장자를 바꿔치지 않고는 하나님의 뜻을 상속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에, 야곱과 에서에게 있은 일과 같은, 역사에 없는 모순된 일을 경륜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102-177, 1978.12.24)

하나님의 세계에는 본래부터 장자가 축복받게 돼 있지 차자가 축복받게 돼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차자의 자리에서 장자권을 찾아오지 않고는 하늘나라 아들의 자리에 설 수 없을 뿐 아니라 축복 받을 수 있는 원리 기준을 대신 할 수 없기 때문에…. 야곱이 지혜로운 것이 뭐냐? 형님이 사냥 갔다 온 다음에 배가 고플 것을 알고 죽과 떡을 줘 가지고 장자권을 샀다는 사실이 놀랍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버지를 속여서라도, 아버지가 반대하더라도 장자 권한을 찾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타락한 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했다는 것입니다.
(131-180~181, 1984.05.01)

야곱은 ‘내가 에서 형보다 몇 배 더 끈기 있고, 아버지 어머니나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모든 형제들보다도 잘하게 되면 장자가 되는 것이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를 섬기거나 하나님을 섬기는데 있어서, 형제를 사랑하고 일족을 대하는 데 있어서 에서보다 야곱이 낫다 할 때는 모든 사람은 그 형, 에서를 집어치워 버리고라도 야곱을 형님으로 하겠다고 하는 이론이 성립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걸 바라보았습니다. 야곱은 참 약은 사람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야곱은 출발과 끝을 바라보고 싸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야곱은 끝을 바라보고 먼 곳을 바라보고 싸운 사람이요, 에서는 당장의 현실을 보고 싸운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108-96, 1980.06.29)

그래서 형님의 장자의 기업을 떡과 팥죽을 주고 사 가지고 이것을 전부 빼앗는 놀음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양가죽을 팔에다 두르고 자기 아버지를 속여 가지고 축복을 받았는데, 이것이 왜 하나님의 경륜 가운데 있었느냐 하는 것을 지금까지 아무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거 왜 그래야 되는냐? 하나님의 상속을 받기 위해서는, 상속을 받으려면 장자의 자리에 나가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이 본래의 창조이상의 원칙인 것입니다. 창조원리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빼앗는데도 그냥 그대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형님이 동생에게 팔았습니다. 팔았던 것을 동생이 찾는 것입니다. 야곱이 나쁜 것이 아니라 에서가 나쁘다는 것입니다. 장자의 기업을 팔다니!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대를 묶어 상속 받는 것을 야곱은 엄청나게 바랐었고 귀하게 여겼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뭐냐 하면, 장자의 자리, 장자의 자리에 나가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20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한 후에 에서를 만났는데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에서가 야곱을 죽이지 않고 환영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 위에 장자의 기업을 이어받을 수 있는 횡적인 이스라엘권이 성립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타락세계가 어떻게 됐느냐 하면, 장자로서 타락한 세계가 태어났는데 차자인 하늘편의 야곱이 나타나서 장자의 기업을 빼앗는, 또 다른 장자가 이 땅 위에 태어난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세계를 중심삼고 볼 때 이스라엘은 장자권 세계에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고 또 다른 장자와 같은 입장에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두 장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그렇다는 겁니다. 그러니 이 유대 나라, 선민권과 사탄세계의 이 로마를 중심한 전 세계가 언제나 대결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장자의 자리에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선민권은 무엇이냐? 개인에서부터, 가정에서부터, 전부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는 것입니다.
(102-177~178, 1978.12.24)

장자권은 복귀되고 아버지로부터의 축복은 야곱에게 주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너무나도 화가 나서 전에 가인이 그렇게 했듯이 야곱을 죽이려고 한 것입니다.
(55-112, 1972.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