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긍휼과 자비
종교 경전
‘인(仁)’은 ‘사람(人)’이란 뜻이므로 합하여 말하면 ‘도(道)’가 된다.
맹자 Ⅶ.
B.16 (유교)
자비는 다만 연민과 사랑의 맛이 나는 마음이다.
나가르주나, 보의 화환 437 (불교)
아나스와 압둘라가 하나님의 사도의 말씀을 전하기를, “모든〔인간〕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식이거늘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는 자는 그 분의 자식들을 친절하게 돌보는 자이니라” 하였다.
바이하키 하디스 (이슬람)
신의 사랑에 빠진 자는 만유를 사랑한다.
아디 그란트, 와단스, M.1, p.557 (시크교)
널리 이로운 일에 능숙하고 고요한 마음상태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이 행해야 한다. 그는 유능하고 정직하고 고결하고 상냥하고 온유하며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만족할 줄 알아서 다른 사람들이 공양하기 쉬워야 하며, 분주하지 않고 생활이 간소하며, 몸과 마음이 고요하고 슬기로우며, 가족에 대하여 무모한 집착을 지니지 않아야 한다.
그는 항상 다음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 ‘일체 존재가 행복하고 편안하며 그들의 마음이 건전할지이다!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 약하거나 강하거나, 키가 크거나 억세거나 또는 중간이거나, 짧은 것이거나 작은 것 또는 큰 것이나, 예외 없이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멀리 사는 것이거나 가까이 사는 것이거나, 이미 생겨난 것이거나 장차 생겨날 것이거나 일체 존재가 행복할지이다!’
서로가 속이지도 말고 어느 곳에 있는 어떤 사람이든 경멸하지 말게 하소서. 누구든지 분노나 증오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마음을 내지 말게 하소서. 어머니가 외아들을 목숨 바쳐 구하듯이, 모든 존재를 향한 자애로운 마음이 돈독해지소서.
한량없는 사랑의 마음이 일체의 세계에 위로 아래로, 아무런 장애 없이 원한 없이 적의 없이 두루 퍼져 나가게 하소서. 서 있거나 가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깨어 있는 한 자애의 마음이 굳게 새겨지게 하소서.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청정한 삶이라고 합니다.
쿠다카 파타, 멧타 숫타 143-151 (불교)
이제 시샘하는 마음이 다하여 내가 성자들의 세계에 들었도다. 누구와도 소원하지 않으며, 누구와도 타인이 아니며, 진실로 모든 이가 나의 벗이라. 신께서 행하시는 모든 것, 이와 더불어 내가 즐거워하나니, 이것이 내가 성자들로 받은 지혜라. 오, 만유에 충만하신 신이시여! 당신을 바라봄에 내가 활짝 피어납니다.
아디 그란트, 카나라, M.5, p.129 (시크교)
시장에서 남의 발을 밟으면 잘못을 사과하지만, 자기 형의 발을 밟았을 때는 애정 어린 가벼운 동작만으로 얼버무리면 되고, 크게 친한 어버이의 발을 밟았을 때는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극한 예(禮)는 자기와 남과의 구별을 인정하지 않고, 지극한 의(義)는 자기와 사물과의 구별을 하지 않으며, 지극한 지(智)는 모의하지 않고, 지극한 인(仁)은 각별한 친근함이 없으며, 지극한 신(信)은 금(과 같은 물질)이 필요하지 않는다.”
장자 23 (도교)
인(仁)은 단순히 획일적인 관대함이 아니다. 그 에너지는 우주에 있어서 봄 시절이고, 그 이치는 우주 속에 살아 있는 것의 마음이다.
주희(朱熹)
말씀 선집
하나님은 수많은 종교를 통해 ‘사랑해야 된다’고 가르칩니다. 석가모니가 말하는 자비도 사랑을 중심삼은 말입니다. 사랑을 빼놓으면 성립이 안 되는 것입니다.
유교에서 말하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인의라는 것도 사랑을 빼놓으면 아무 것도 안 되는 것입니다. 인(仁)이라는 말도 두 사람 아닙니까? 사람 인(人)자 앞에 두(二) 사람입니다. 하늘(天)이라는 말도 두(二)사람(人)이라는 말입니다.
(256-205,1994.03.13)
참다운 사랑은 위하는 데서부터, 참다운 이상도 위하는 데서부터, 참다운 평화, 참다운 행복도 위하는 자리에서 성립되지, 위하는 자리를 떠나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75-318,1975.01.16)
타락한 인간이라도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르지 않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절대 중의 절대입니다. 그것은 존재의식을 넘어서 존재할 수 있고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 우주의 어떠한 원동력이나 어떠한 존재물의 주관권 내에서 머물지 않고 초월합니다. 사랑은 이념을 초월합니다. 인격적인 가치를 초월합니다. 이 기준은 하나님의 가치까지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
(8-273,1960.02.07)
도대체 참된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사랑인데 어떤 사랑을 참된 사랑이라 하는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그것은 원수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런 사랑이 참된 사랑이다 이런 말입니다. 백인끼리 사랑하는 거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백인이 흑인을 사랑하는 것이 참된 사랑에 가까운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참된 사랑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어째서 참된 사랑입니까? 그것은 아무도 비판할 수 없고 불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둥글고, 언제나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상충 없이 운동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사랑은 나의 눈에 들어와도 좋고, 코에 들어와도 좋고, 입에 들어와도 좋습니다. … 걸리는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게 왜 편합니까? 어디에 가든지 막히는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
(115-315~316,1981.11.29)
이 악한 세계를 무엇으로 소화할 것이냐? 군사력으로, 경제력으로, 지식의 힘으로, 함금의 힘으로 이 악한 세계를 어떻게 소화해야 되느냐? 사랑의 힘으로 소화해야 됩니다. 능력이 많고 권능이 많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굴복시킬 수 있는 하나의 비법은 힘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지식 가지고도 안 됩니다. 돈 가지고도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욕심을 볼 때, 하나님까지도 싸워서 이기고 싶은 것입니다.
‘왜, 이런 사랑이 억 천만년 걸려 먹었소! 하나님까지도 내가 굴복시킬 수 있고, 하나님의 모든 것까지도 내가 전부 빼앗아 가지고 하나님보다 높은, 하나님 이상이 되고 싶다’ 하는 것이 힘 가지고 됩니까? 지식 가지고 됩니까? 돈 가지고 됩니까? 안 됩니다.
오직 참사랑 하나만 가지면 됩니다. 하나님도 그 사랑 앞에는, 하나님이 아무리 크더라도 참사랑에 걸리면 ‘하나님도 내 독에 따라 들어가 있어요.’ 하면 ‘어, 그러자, 그러자!’ 한다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나 증조할아버지, 이제 늙어 죽게 된 할아버지 상투 끝에 증손자가 올라가자마자 미끄러져 내리면서 오줌똥을 확 쌌다고 합시다. 그걸 용서할 법이 어디 있습니까? 얼굴로부터 오만 가지 볼장 다 봤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도 아이구, 어머니 아버지도 아이구, 형제들도 아이구 큰일 났다고 하지만 ‘그놈의 자식, 복수해라!’ 그럴 수 있습니까? 할아버지가 ‘아이구 원통해, 역사 이래…. 증조할아버지 간판 갖고 죽지를 못해!’ 하는 선포식이 통합니까?
이럴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위대한 힘, 위대한 능력, 위대한 조화단지, 얼마나 좋습니까? 조화가 데굴데굴 굴러서 얼마든지 들어가는 조화단지, 얼마나 좋습니까?
(139-209~210,198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