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랑의 원형운동
종교 경전
현세에서 선을 행하는 자들에게는 보상이 있으리라.
꾸란 39.10 (이슬람)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자비함을 입을 것이다.
마태복음 5.7 (기독교)
나를 사랑하면 내 사랑을 받고 애타게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잠언 8.17 (기독교)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11-12,16,19 (기독교)
그날에 너희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또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내 계명을 받아서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요한복음 14.20-21 (기독교)
남자 신도들과 여자 신도들은 서로 상호 보호자이니라.
꾸란 9.71 (이슬람)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 아내이신 여러분, 주님께 순종하는 것같이 남편에게 순종하십시오.
에베소서 5.21-22 (기독교)
사랑은 둥글게 돌아온다. 사랑받은 자는 사랑하는 자를 닮음으로써 사랑하는 자를 감동시킨다. 그러면 사랑하는 자는 그 사랑받은 자를 맞이하기 위해 나아간다. 처음에 시작했던 자가 곧 끝이 된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바른 사랑은 그 본성상 질서 있고 아름다운 것에 대해 절제 있고 교양 있게 사랑하는 것이겠지?
플라톤, 국가3 (헬레니즘)
말씀 선집
절대적 사랑은 강제가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순환하는 것입니다.
(196-134, 1989.12.31)
사랑은 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남자를 만들 때 위해서 살라고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태어났고, 여자는 남자 때문에 태어났습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찾는 데는, 그 사랑을 맞이하는 데는 위하는 길에서만이 가능하지, 위하지 않고 위하라고 하는 길에서는 참된 사랑은 없습니다.
(143-54, 1986.01.15)
남자로 태어난 사람이 가야 할 길은 자기를 위하는 것으로 종극(終極)지을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것으로 종극 짓게끔 태어났습니다. 남자가 무엇 때문에 태어났느냐? 남자 자신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자 때문입니다.
또, 아무리 미인이고 아무리 남자가 싫더라도 여자가 왜 그렇게 태어났느냐? 자기를 위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존재의 기원은 나를 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하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되는 세상이 되거들랑 천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모는 자식을 위하고 자식은 부모를 위하게 될 때, 서로 위해 주니까 돌아가는 것입니다. 위하면 위할수록 빨리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상적입니다. 사각형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둥글둥글 한 것입니다. 위하는 것은 밀어 주는 것입니다. 저쪽에서 나를 위하여 밀고 나도 그쪽을 위하여 밀어 주니 빨리 돌아가는 것입니다.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은 원형을 닮아 있습니다. 얼굴도 둥글합니다. 여기에 둘이 있는데 이 둘이 합해 있는 것입니다. 눈도 동그랗습니다. 상부 하부가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 다 완전히 주고받아야 됩니다. 정맥, 동맥도 주고받습니다.
주는 길은 있는데 받는 길이 없으면 병나는 것입니다. 깨진다는 말입니다. 존재물은 운동을 하는데, 그 존재의 근원에 있어서 위할 수 있는 작용의 원칙을 세우지 않고는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69-83~84, 1973.10.20)
그렇기 때문에 운동을 하게 되면 반드시 점점 가운데가 불러 올라옵니다. 원형이 된다는 겁니다. 소용돌이치는 거기는 파고들어가기도 하지만, 파는 작용도 하지만 올라오는 작용도 합니다. 모래 같은 것을 보면 그런 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주위에 있는 것을 모은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주고받는 힘의 작용에 의해서 이런 원형운동이 벌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내 안에 있고 예수님도 내 안에 있고 나도 예수님 안에 있다는 개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셋이 합해서 하나의 원형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124-51, 1983.01.23)
수직과 수평이 어디서 합하느냐? 이것은 운동하기 때문에, 구형의 운동이기 때문에, 제일 중앙선에서 합해야 된다는 논리가 나옵니다. 이것을 중심 삼고 저것을 딱 긋게 될 때 그 선에 딱 들어가면 전우주가 공명됩니다. 영계도 환히 알게 됩니다.
사랑을 중심 삼고 관계되는 세계는 교육이 필요 없습니다. 누가 지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 자체가 나를 지배합니다. 하나님까지도 절대 복종한다고 했지 않습니까? 방향성이 틀리면 그 자체가 나를 바로잡아 줍니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인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214-233, 1991.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