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신앙과 품성에서 비롯된 참사랑
종교 경전
이른바 그 집안을 안락하게 하는 것이 그 몸을 닦음에 있다고 하는 것은, 사람들이 친하고 사랑하는 것에 편벽되며, 그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것에 편벽되며, 그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것에 편벽되며, 그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것에 편벽되며, 그 거만하고 태만히 하는 것에 편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좋아하면서도 그 나쁨을 알며, 미워하면서도 그 좋은 점을 아는 자는 천하에 적은 것이다. 그러므로 속담에 이런 말이 있으니, “사람은 그 아들의 나쁜 점을 알지 못하며 그 싹의 자라남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것을 일러 몸이 닦이지 않으면 그 집안을 안락하게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대학 8 (유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8 (기독교)
사랑하는 이여, 남편이 사랑스런 것은 남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아뜨만이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아내가 사랑스런 것은 아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아뜨만이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여, 자식이 사랑스런 것은 자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아뜨만이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브리하드아란야카 우파니샤드 2.4.4-5 (힌두교)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금할 법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23 (기독교)
다른 이에게 전해질 수 있는 사랑이란 어떤 것인가? 나나크가 말하노니, 늘 사랑의 주께 몰입하는 이가 참으로 사랑하는 이로다. 호의와 악의를 구별하는 이는 참으로 사랑하는 이가 아니며, 그는 오히려 셈에 사로잡힌 불쌍한 이로다.
아디 그란트, 아사 키 바르, M.2, p.474 (시크교)
악에 빠지지 않고 선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신을 경외하도록 권고합시다. 사랑[의 신]이야말로 우리의 지도자이며 통솔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누구도 그 뜻을 거역하지 않게 합시다. 그를 반대하는 사람은 신들에게 대적하는 사람입니다.
이 신과 친구가 되고 가까이 사귀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참사랑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몇몇 되지 않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 내 말은… 모든 곳의 남성과 여성을 포함합니다. 우리의 사랑이 온전히 실현되고, 모두가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 본연의 참사랑을 지니게 되면 온 인류가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플라톤, 향연 (헬레니즘)
어디 좀 말해 보세요.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조화될 수 있을까요? 자신에게 주체스러운 사람이 남에게 기쁨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요? … 저마다 저 자신에게 만족하여 남들로부터 갈채를 받기 위해 제가 맨 먼저 제 자신에게 갈채를 보낸다는 것은 그렇게도 필요한 일이랍니다.
에라스무스, 우신예찬 22 (휴머니즘)
말씀 선집
우리 인간이 찾는 사랑은 횡적인 사랑, 횡적인 터전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종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종횡이 연결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238-140, 1992.11.22)
여러분의 몸과 마음 가운데는 누가 들어와 있느냐 하면 하나님이 들어와 있습니다.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하나 되면 하나님이 임재한다는 것이 원리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거기에 임재하느냐? 사람의 몸과 마음이 하나 되면 반드시 거기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 되는 원칙이 사랑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상대적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임한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합니다. 성전은 어떤 곳입니까? 일하는 곳입니까? 어떤 곳입니까? 성전 하게 되면 안식처라는 말과 통합니다. 그러면 쉬는 데는 무엇 가운데서 쉬는 것입니까? 사랑 가운데 안식하는 것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쉴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 인간이 바라는 이상이 있다면, 그러한 사랑이 있는 최고의 내심적 기준입니다. 그러한 마음의 사랑을 지닌 곳을 심정의 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솟는 샘터와 마찬가지여서 퍼내고 퍼내더라도 끝이 없습니다. 왜냐? 하나님이 거기에 계시므로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91-77~78, 1977.01.30)
이 경계선, 영점을 왕래할 수 있는 것은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몸 마음이 이 점에서 하나 됩니다. 빈자리가 생기면 메우고 하는 것입니다. 몸 마음이 완전히 거기에서 스톱하는 것입니다. 영점을 통과하는 것은 참사랑밖에 없습니다. 그 길밖에 없습니다.
영점, 여자 마음도 영, 남자 마음도 영, 거기에서 하나 되는 것입니다. 영점에서 완전히 하나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개념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남편과 아내라는, 둘이라는 개념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딱 하나입니다. 그건 뭐냐 하면, 나는 당신을 위한다는 것입니다. 영점입니다. 어디 가나 자유입니다. 돌아서나 엎어지나 자유입니다. 그게 영점입니다. 모든 구형의 중심이 영점입니다. 양쪽을 다 소유한 것이 영점이라는 말입니다. 참사랑이 그렇게 해서 영점에 오는 것입니다.
(230-103, 1992.04.26)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나라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모를 사랑할 수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나라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세계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22-97, 1969.01.26)
사랑의 이상을 중심하고 볼 때, 동·식물세계에서는 그 사랑의 관계가 모두 번식을 전제로 하여서만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인간만은 예외입니다. 인간은 부부사랑의 관계에 자유를 누립니다. 이것이 만물의 영장된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아들딸인 인간이 무한한 사랑의 기쁨을 갖도록 축복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한 참된 자유는 책임성을 전제로 합니다. 만일 책임성이 없이 개개인이 사랑의 자유만 주장하고 실천한다면 얼마나 큰 혼란과 파국이 오겠습니까? 지고한 사랑 이상을 이룰 인간의 완성은 사랑에 대한 책임성을 지닐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 책임성은 다음 세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인간은 사랑의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자기 수양, 자기 관장으로 자유로운 참사랑의 주체가 되는 책임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랑의 책임성은 법이나 이목 때문에 지켜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생명적 종적 관계 속에서 자아주관, 자기 결단으로 지켜지는 것입니다.
둘째는 상대에 대한 책임성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 상대의 자기에 대한 사랑이 나누어지기를 원치 않습니다. 부부간의 횡적인 사랑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 간의 종적인 사랑의 관계와 달리, 나누어지면 벌써 그 온전성이 파괴됩니다. 이는 부부간에 절대적인 사랑의 일체를 이루게 되어 있는 창조원리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상대를 절대로 위해야 할 사랑의 책임성이 있습니다.
셋째는 자녀에 대한 사랑의 책임성입니다. 자녀들의 자랑과 행복의 기지는 부모의 사랑입니다. 자녀들은 참사랑으로 화합 일체 된 부모를 통해 생명이 태어나고, 그러한 사랑 속에서 양육되기를 바랍니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가장 귀한 책임은 외적인 양육만이 아니라 그들의 영성을 온전하게 해 줄 참사랑의 생명적인 요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소중한 이유는 이 때문입니다. 생활적인 경험을 통해 체득하는 참된 자식의 심정, 형제의 심정, 부부의 심정, 부모의 심정은 참되 가정 이외 그 어느 곳에서도 얻을 수 없습니다.
(277-201~202, 1996.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