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독교의 핵심적 전통 : 사랑과 희생
종교 경전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가복음 14.27 (기독교)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너희에게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 너희보다 먼저 온 예언자들도 이와 같이 박해를 받았다.”
마태복음 5.11-12 (기독교)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자랑을 합니다. 우리가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3-5 (기독교)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몰두하며, 서로 사귀는 일과 함께 음식을 먹는 일과 기도에 힘썼다. 사도들을 통하여 기이한 일과 표적이 많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면서,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대로 나누어 가졌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마다 빵을 떼면서,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
사도행전 2.42-47 (기독교)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실 것입니다.
사랑은 여기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 주시고, 우리의 죄를 속하여 주시려고, 속죄제물이 되게 해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7-12 (기독교)
비난의 눈초리로 우리를 바라보는 이들을 사랑하라. “보아라,” (이교도가) 말을 한다. “이 기독교인들이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는지” 이교도들은 서로를 증오하는 무리들이다. “이들은 서로를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교도들은 서로를 죽이는데 더 준비된 자들이다.
테르툴리아누스, 용서
순교자의 피는 교회에 뿌려진 씨가 된다.
테르툴리아누스, 용서
말씀 선집
기독교는 십자가로 출발하여 가는 곳곳마다 맞았고 피를 흘렸다. 오늘날 기독교는 세계에서 맞는 입장을 취해야 세계를 주관할 수 있다. 보라! 가장 많이 쓰러졌던 바티칸 언덕에 기독교의 궁전이 서지 않았는가?
(뜻길, p.319)
오늘날 기독교가 세계적 판도를 이루기까지 얼마만한 희생의 대가를 치렀는지 모릅니다. 순교의 제단에 끊임없이 희생시킴으로써 비참한 그 함성이 지구상에 울려 퍼져 그 울음소리가 안 들린 곳이 없을 만큼 역사를 더럽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피의 제단이 연속되어 오늘날 목전에까지 도달한 역사적인 한이 엉클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이것을 이어받아 해원해야 할 엄숙한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을 해방하고 기독교를 재차 해방해야 됩니다.
(210-361, 1990.12.27)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골고다를 향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하늘을 배반한 배역의 무리가 되었으나 그들을 세우기 위하여 수고하신 하나님의 슬픈 역사가 인계된 것입니다.
이 눈물의 역사, 이 땀의 역사, 이 피의 역사를 상속받은 것이 기독교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모르는 자는 망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이것을 몰라서 망했습니다.
여러분도 그저 성경과 찬송가만 들고 교회에 출입할 것이 아니라, 피 흘리는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을 알고, 눈물 흘리는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을 알고, 땀 흘리는 하나님을 대신한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희생과 죽음으로써 세계를 점령해 나오는 것이 기독교의 전통이요, 하나님이 인간을 찾아오시는 전통적인 노정입니다.
(10-281, 1960.11.06)
오늘날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은 고통이 따르는 일을 어떻게 소화해내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하늘의 심정을 끌어들여 ‘아버지여!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늠름히 넘고 죽음의 고통을 늠름히 넘어서 불쌍한 만민을 위하여 복빌 수 있었던 것처럼 저희들도 그런 입장에서 예수님이 가졌던 마음을 가지게 해 주시옵소서’ 할 수 있는 마음을 갖는 것, 문제는 그것입니다.
(7-96, 1959.07.19)
기독교인들이 즐겨 외우는 성경구절이 요한복음 3장 16절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를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세상이라는 것은 이 우주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예수님을 보냈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유대교를, 유대인을 이처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보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분이냐? 세계의 중심이 되는 존재입니다. 세계를 구하기 위해 온 분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그 믿음 가운데는 세계가 다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들어가고, 이 땅도 들어가고, 전체가 들어간다는 개념을 모르고 있습니다.
(124-294, 1983.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