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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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이스라엘 땅

종교 경전

시온을 생각할 때, 나는 잠잠할 수가 없다. 예루살렘을 생각할 때,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그의 정의가 동터 오고 그의 구원이 횃불처럼 타오르기까지 어찌 잠잠할 수 있으랴? 마침내 뭇 민족이 너의 정의를 보고 모든 제왕이 너의 영광을 보리라.
여호와께서 몸소 지어주실 새 이름, 사람들이 그 이름으로 너를 부르리라. 너는 여호와의 손에 들려 있는 화려한 관처럼 빛나고 너의 하나님 손바닥에 놓인 왕관처럼 어여쁘리라.
다시는 너를 ‘버림받은 여자’라 하지 아니하고 너의 땅을 ‘소박데기’라 하지 아니하리라. 이제는 너를 ‘사랑하는 나의 임’이라, 너의 땅을 ‘내 아내’라 부르리라.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해 주시고 너의 땅의 주인이 되어주시겠기 때문이다.
이사야 62.1-4 (기독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불쌍히 보시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오게 해주실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쫓겨 갔던 너희를 만백성 가운데서 다시 모아들이시리라.
너희가 비록 하늘과 땅이 맞닿는 데까지 흩어져 갔더라도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거기에서 모아 데려오실 것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너희 선조들이 차지했던 땅으로 데려오시어 그 땅을 다시 차지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너희를 선조들보다 더 잘되게 해주시고 더 불어나게 해주실 것이다.
신명기 30.3-5 (기독교)

그리고 하나님이 모세 이후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노니, 그 땅에 살라. 그러나 내세의 약속이 임하게 되면 우리는 여러 나라에서 모인 무리로서 너희를 데려가리라.
꾸란 17.104 (이슬람)

우리 영혼의 르네상스와 함께 세계 문명은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다툼은 종식되고, 우리의 부활과 함께 모든 생명체들이 새로운 탄생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종교는 새롭고 소중한 의복으로 갈아입고, 더럽고 께름칙하고 불결했던 모든 것을 벗어던질 것이다.
태초에 인류를 위해 이스라엘 우물가에 준비된 고결한 빛의 이슬을 마시며 모두 화합할 것이다. 인류를 향한 아브라함의 강건한 축복이 실현되며, 이로 인해 이스라엘 땅에 새로운 풍요로움이 찾아올 것이다.
아브라함 이삭 쿡, 시온주의

말씀 선집

이스라엘은 아무리 어려운 시대와 환경을 거치더라도 자기들이 선민이라는 의식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핍박과 서러움이 언제나 그들을 맞아 주었지만 그들은 그 서러움을 통하여 한날의 희망을 표준하고 나갔던 것입니다.
그 서러움이 그들을 낙망하게 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들을 단결하게 하고 어려운 환경을 타개하게 하는 역사적인 투쟁과정을 남기게 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슬픔이라는 것은 낙망의 조건이 될 수도 있지만, 목적을 지니고 가는 사람에게는 도리어 그것이 목적을 성사시킬 수 있는 내적인 힘을 결성하는 조건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민족이 염원한 것은 무엇이냐? 유일신을 중심삼고 국가와 민족이 심정일치의 이념권 내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추구해 나오면서 그들은 죽더라도 그것을 마음에 품고 죽었습니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한 것을 한으로 남겼습니다. 그들이 죽을 때 부모로서 혹은 어떠한 지도자로서 후손 앞에 그 뜻을 이룰 것을 유언으로 남겼습니다. 이런 것을 두고 볼 때, 슬픈 역사과정을 거쳐 온 민족일수록 그 역사과정을 통하여 세계적인 승리의 터전을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루어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라 없는 가운데 슬픈 운명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자기 민족에게 나타나는 환경을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언제나 국가 관념을 가졌고 동족애를 더하여 갔던 것입니다.
그 슬픔에 부딪치게 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국가를 추구하게 되었고, 현재 자기들의 구속된 환경을 타파해 버리고 해방된 새로운 환경을 추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슬픔이 곧 그러한 동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민족은 어느 때, 반드시 승리의 한 때를 맞는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아야 됩니다.
(30-247~248, 1970.03.29)

이스라엘 민족은 주님을 만나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천하통일 할 줄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것에 자기 자신을 투입하고 역사를 재창조하여 사랑의 대상을 찾아 나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오시는 주님과 더불어 이스라엘 민족을 중심삼고 투입해서 로마와 아시아를 통일하겠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임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은 2천 년 동안 유리고객이 되어서 말굽에 밟혀 죽고, 총칼에 맞아 죽고, 찢겨 죽는 갖은 수욕을 다 당한 것입니다. 그 후 주님이 다시 올 수 있는 재림시대인 1948년도를 중심삼고 한국의 독립과 같은 그런 이스라엘의 독립이 오는 것입니다.
(208-286~287, 1990.11.20)

예수님이 오신 목적이 무엇이냐 하면 나라를 찾는 것입니다. 종족적 메시아는 예수님이 이스라엘 나라와 유대교를 중심으로 해서 나라를 찾아 그것을 이루지 못한 것을 탕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축복가정은 예수님의 입장에 서기 때문에 나라를 복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북조 10지파와 남조 2지파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레아와 라헬에 의하여 하나가 되어야 했던 것이 전쟁에 의해서 국가적인 기준으로 분할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모세시대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입장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오른쪽 강도와 왼쪽 강도입니다.
그것이 가인 아벨의 입장으로 세계적인 기준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기준 위에 재림주가 와서 전환을 하고 승리권을 이루어서 통일해야 하기 때문에 재림주의 사명을 지닌 사람은 공산주의를 정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공산주의를 타도하는 세계 제일의 챔피언으로 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하나 만들어야 하고, 세계를 하나로 만들어야 하고, 미국조차도 수습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종교계와 정치계가 모두 하나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기독교가 원수지요? 이스라엘과 이슬람권 중동이 원수 관계입니다. 이것을 평화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250-331, 1993.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