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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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비유로 가르치는 경전

종교 경전

우리(하나님)는 이 꾸란 속에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가지 비유를 사용했노라, 그들이 충고를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꾸란 39.27 (이슬람)

일체중생이 그 마음속에 온갖 다양한 욕망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역량에 따라서 그러한 욕망들이 다양한 추론들, 우화적 표현들과 방편들로써 극복될 수 있는 다양한 법을 설하였다.
법화경 2 (불교)

예수께서 혼자 계실 때에, 예수의 주위에 둘러 있는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그 비유들이 무슨 뜻인지를 예수께 물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맡겨 주셨다. 그러나 저 바깥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수수께끼로 들린다. 그것은 ‘그들이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셔서, 그들이 돌이켜 용서를 받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마가복음 4.10-12 (기독교)

‘리그 베다’의 그 불멸의 존재, 모든 신들이 거하는 에테르 같은 자아를 모르는 자에게 ‘리그 베다’는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오직 그것을 아는 자들만이 만족 속에 머문다.
스베타스바타라 우파니샤드 4.8 (힌두교)

성서의 이야기들은 토라에 덧입혀진 옷들일 뿐이다. 그것들을 토라 자체로 이해하는 이들이여, 안타깝도다!
조하르, 민수기 152a (유대교)

그 분은 너에게 성서를 내려주신 분이시니라. 그 안에는 성서의 근간을 이루는 분명한 말씀과 (여러 해석을 할 수 있는) 불명료한 다른 것들이 있노라. 빗나간 마음을 가진 자들은 불명료한 것들을 채택하여 혼란을 구하고 멋대로 해석하노라. 그러나 하나님과 단단한 지식의 토대를 가진 자 이외에 참 해석을 하는 자는 없으며 그들이 말하길 우리는 우리의 주님으로부터 온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이해하는 자 이외에 아무도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노라.
꾸란 3.7 (이슬람)

여러분이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마음대로 해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을 받아서 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20-21 (기독교)

만약 네가 네 마음의 거울에서 악의 먼지를 닦아 낸다면, 너는 모든 섭리에서 명백해지는 만유를 포용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계시된 상징적 언어들의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신성한 지식의 신비를 깨닫게 될 것이라.
카타브 이 이칸 68-69 (바하이교)

말씀 선집

하나님은 때 아닌 때에 때의 것을 암시하여, 어느 시대 어떤 환경의 사람이든지, 자유롭게 그 지능과 심령의 정도에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시대적인 요구를 깨닫도록 하시기 위하여, 모든 천륜의 중요한 문제들을 상징과 비유로써 교시해 나오셨다(요 16:25).

그러므로 성서는, 각각 그 정도의 차는 있지만, 모든 해석자들에게 상이한 관점을 세워 주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교파가 분열되는 주요한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서를 해석함에 있어서도 그 관점을 어디에다 두는가 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원리강론, 재림론 2.1)

오늘날 신랑이 신부를 찾아 나오기 위한 편지체로 쓰인 성경의 말씀에는 암호가 많습니다. 왜 암호로 말씀했는가? 심정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누구나 다 풀지 못합니다. 못 풉니다. 신랑 신부만이 풀 수 있습니다. 심정을 통하여 모실 수 있는 준비를 한 자만이 풀 수 있지, 그렇지 않은 사람은 못 풀게 돼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암호의 정체가 무엇이뇨? 신랑이 올 수 있는 문을 여는 비결인데, 그 비결은 무엇인가. 심정입니다. 부모의 심정은 어린 아기를 품고 젖을 먹일 때나 그 자식의 머리가 세어서 백발이 되었을 때나 같습니다. 그 심정에는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성경에 숨어 있는 모든 심정의 근원을 헤쳐내야 되겠습니다.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데는 학·박사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암만 해석해도 학설은 지나나고 지나갑니다. 심정은 논리로써 지배할 수 없습니다. 이론으로도 체휼할 수 없습니다. 체계로써 방향을 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 심정은 천륜과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흘러나가는 것입니다. 성경이란 배우지 않고도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심정의 흐름과 느낌을 갖고 해석하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학·박사가 주장하는 현대의 신학 사조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심정의 세계는 지나가는 법이 없습니다. 이것을 왈 알파와 오메가, 즉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합니다.
(8-305~306, 1960.02.14)

옛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자연은 제1의 성경이라고 했습니다. 제2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엮어온 성경을 보면 내용을 확실히 알 수 없습니다. 그 내용을 보고 선생님이 얼마나 머리를 흔들었는지 압니까? 그것은 점쟁이들이 점하는 것처럼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것입니다.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래서 사실의 내용을 판단하고 전후사정을 가려내려면 힘이 들기에 성경보다는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의 세계가 제일이라는 것입니다.
(20-271, 1968.07.07)

구약성경의 말라기는 신약성경의 계시록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책이냐 하는 것을 확실히 알아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하늘나라가 아닙니다. 사탄나라에 의해 포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이 세계에 하나님이 정보원을 보내어 그를 통하여 뜻을 발전시켜 사탄세계를 들이받고 사탄을 추방하려고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생명을 걸고 반대하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낼 적마다 사탄이 잡아 죽인 것은 사탄이 주관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종교인, 더욱이 유대교인과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보내준 사탄세계에 대한 정보원인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미국과 소련이 싸우게 될 때에 서로가 원수의 나라에 정부의 정보원을 보내게 됩니다. CIA면 CIA의 국장이 자기 요원들을 보내게 될 때, 처음부터 상대가 작전을 알게끔 해서 보냅니까? 전부 비밀리에 암호를 가지고 통고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암호는 이것을 지시한 CIA의 국장 한 사람밖에 모르는 겁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암호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밖에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도 끝 날에 대한 것은 천사도 모르고 자기도 모른다고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끝 날에 암호를 풀 수 있는 또 다른 예언자를 보내는 것은 틀림없이 이론적인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아모스 3장 7절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그의 은밀한 뜻을 그의 종 선지자에게 나타내지 아니하고는 섭리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지적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하고 직접 통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나와야 된다는 말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끝 날에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밀실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담판기도 하라고 가르쳐 줬다는 것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이제 성경은 암호로 기록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성경을 함부로 풀다가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성경에 대해서 기독교는 뭘 어떻게 해야 되느냐? 주님의 뜻을 받들어야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기독교 신자들이 ‘내가 믿고 천국가자, 나 혼자 구원 받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자의 책임은 내가 구원받는 것도 물로 목적이 되겠지만 그 구원을 받아 세계를 구하는 것이 되어야만 합니다. 이것을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73-207~208, 1974.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