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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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라

종교 경전

마침 그 지방에 흉년이 들었는데, 그 흉년이 너무나 심하여 아브라함은 이집트에 몸 부쳐 살려고 옮겨간 일이 있었다. 이집트 땅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아브라함이 아내 사래에게 당부하였다. “나는 당신이 정말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하오. 이집트인들이 당신을 보면 당신의 남편이라고 해서 나를 죽이고 당신만 살려둘 것이오. 그러니 나를 오라버니라고 부르시오. 그러면 내가 당신 덕으로 죽음을 면하고 대접도 받을 것이오.” 아브라함은 이집트에 들어갔다.
이집트인들이 보기에 그의 아내는 정말 아름다웠다. 이집트 왕의 신하들은 그를 보고 왕 앞에 나아가 아름다운 여인이 나타났다고 아뢰었다. 그리하여 사래는 왕궁으로 불려 들어갔다. 아브라함은 그 덕분에 대접을 받고 남종들과 여종들, 양떼와 소떼, 암나귀와 수나귀, 그리고 낙타를 여러 마리 받았다.
그러나 왕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를 불러들인 벌로 온 가족과 함께 여호와께 무서운 재앙을 받았다. 왕은 아브라함을 불러 꾸짖었다. “네가 어찌하여 나에게 이런 일을 했느냐? 왜 그를 네 아내라고 하지 않았느냐? 왜 이 여자를 네 누이라고 속여 내 아내로 삼게 하였는냐? 네 아내가 여기 있으니 데리고 당장 물러가거라.” 이집트 왕은 부하들에게 명하여 아브라함을 그의 아내와 모든 소유와 함께 내어보냈다.
창세기 12.10-20 (기독교)

말씀 선집

아브라함이 떠나자고 할 때 어서 가자고 했던 사라 같은 사람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에게 바로 앞에서는 남매 사이라고 하자고 했을 때 사라가 어떻게 했겠습니까? ‘이놈의 영감, 그렇게 고생을 시켜서 끌어내더니만 이제는 여편네는 그만두고 오빠라고 부르라네’ 이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길을 가다가 소나기가 와도 그냥 갔을 것입니다.
집시의 무리가 된 그들에게 누가 밥 한 그릇이라도 갖다 주었겠습니까? 오늘은 이쪽으로 내일은 저쪽으로 돌아다니는 그런 생활을 했는데, 그렇게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사라는 아브라함을 대해 ‘이놈의 영감, 밤에 보다 낮에 보나 아침에 보나 재수 없는 영감이 됐어.’ 그런 주제에 또 남편인 자기를 오빠라고 부르라니…. 이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수난을 거쳐 나오는 가운데서도 사라는 아브라함의 소망의 길과 일치될 수 있어서, 아무런 상충도 없이 하나 될 수 있었습니다. 이상적인 주체가 있을지라도 이상적인 상대가 없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상적인 주체인 아브라함 앞에 이상적인 상대가 나왔는데 그 이상적인 상대를 치려고 할 때는, 완전한 이상적인 주체 앞에 완전한 이상적인 상대형이 있는데 이것을 치려 할 때는 하나님께서 ‘야 이놈!’ 하실 수 있습니다.
(49-144, 1971.10.09)

아벨보다 못한 노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요, 노아보다 못한 아브라함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무엇이 노아보다 낫느냐? 아브라함의 아내는 아브라함이 남매처럼 행동하자고 했을 때도 ‘예!’ 하며 따랐습니다.
그런데 노아가 ‘마누라, 당신하고 나하고 형제처럼 행동 합시다’ 할 때 그의 아내는 반대하는 입장에 섰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의 가정은 노아 가정보다 나았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가정은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노아의 아들 함은 그렇게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제멋대로 행동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하나 된 어머니 사라의 품에서 자란 이삭은 목이 잘리게 되는 자리에서도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 가정은 노아 가정보다 나았던 것입니다.
(46-322, 1971.08.17)

아브라함은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서, 아담가정의 입장을 탕감 복귀하는 상징적인 조건을 세우기 위하여 이러한 섭리노정을 걸어야만 했던 것이다. 아담과 해와가 미완성기에서 아직 남매와 같은 입장에 있었을 때에 천사장이 해와를 빼앗아 감으로 인하여, 그의 자녀들과 만물세계까지 사탄의 주관 하에 속하게 되었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이것을 탕감복귀하기 위한 조건을 세우려면,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남매와 같은 입장에서 처 사라를 사탄의 실체인 바로에게 빼앗겼다가 그의 처의 입장에서 다시 그녀를 찾아옴과 동시에, 전 인류를 상징하는 롯과 만물세계를 상징하는 제물을 찾아오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창 14:16). 아브라함의 이러한 노정은 후일에 예수님이 오셔서 걸어야 할 전형노정이 되는 것이다.
(원리강론, 복귀기대섭리시대 3.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