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막달라 마리아
종교 경전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로 가셨다. 그곳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가 사는 곳이다.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었는데, 마르다는 시중을 들고 있었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 가운데 끼어있었다.
그때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드 향유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 장차 예수를 넘겨 줄 가룟 사람 유다가 말하였다.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요한복음 12.1-5 (기독교)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만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마가복음 14.6-9 (기독교)
주간의 첫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사람 마리아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 문을 막은 돌이 이미 옮겨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 여자는 뛰어서,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로 가서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 제자들은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런데 마리아는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었다. 울다가 몸을 굽혀서 무덤 속을 들여다보니, 흰 옷을 입은 두 천사가 앉아 있었다. 한 천사는 예수의 시신이 놓여 있던 자리 머리맡에 있었고, 또 한 천사는 발치에 있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여인아. 왜 우느냐?”
마리아가 대답하였다. “누가 우리 주님을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뒤로 돌아섰을 때 마리아는 예수께서 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그분이 예수이신 줄은 알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아. 왜 울고 있느냐? 누구를 찾느냐?”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여보세요, 당신이 그분을 옮겨 갔거든, 어디에다 두셨는지를 말해 주십시오. 내가 그분을 모시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셨다. 마리아가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부니!” 하고 불렀다.(그것은 ‘선생님!’이라는 뜻이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너는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내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내가 올라간다고 말하여라.” 막달라 사람 마리아는 자기가 주를 보았다는 것과 주께서 자기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가서 전하였다.
요한복음 20.1-18 (기독교)
말씀 선집
어찌하여 기독교 가운데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남아졌는가? 천추만대에 그의 이름이 전하여 내려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의 이름을 소개하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엔 한낱 천한 여자의 몸으로서 3백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총각 예수의 발에 붓고 머리로 닦았다는 사실을 어느 누가 용납하겠습니까?
제자들까지 비웃고 가롯 유다가 항의하고 전체가 반대하는데 예수님은 어찌하여 복음이 소개되는 곳에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이 기념될 것이라고 하셨던가?
예수님에게는 사랑하는 제자 또는 수많은 사람보다도 그 시간에 있어서 막달라 마리아의 정성이 자신이 하나님께 있는 정성을 다 바친 것과 같은 조건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자 따르던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와 예수님의 모친은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가정과 남편이 있었고, 고유한 구약사상을 중심한 유대교의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든 것을 다 도외시하고, 즉 자신의 사회적인 위신이나 체면을 생각지 않고 죽은 총각 예수의 무덤을 찾아 헤매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만났던 것입니다.
(4-107, 1958.03.16)
예수께서 겟세마네동산에서 하늘을 향해 호소할 때, 그 음성을 듣지 못하고 졸고 있던 세 제자의 모습과,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천적인 가치를 알고서 그분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닦아드림으로써 부활하실 주의 영광을 확인해 드릴 때, 그 마리아의 행위를 비웃고 막아선 제자들의 모습을 대하신 그 심정이 예수님의 원한이 되었음을 오늘날까지 예수님을 따르는 성도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길을 가시면서 서러운 심정을 느끼셨습니다. 그런데 막달라 마리아만은 그런 예수님을 위로하고 염려하면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대신한 예수님의 천적인 내적 심정을 체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녀에게 축복을 내리셨고, 환희의 은사로 그녀를 하나님의 뜻 앞에 세우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2-212, 1957.05.26)
돌아가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사람은 누구였던가? 그 사람은 비록 인간들이 보기에는 미약한 존재였지만 그가 바로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이 고을에서 쫓기고 저 고을에서 비난받고, 가는 곳곳에서 조소를 일신에 받고 다니던 총각 예수님을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따르던 마리아였습니다. 이런 간곡한 마리아 앞에 예수님은 부활의 몸으로써 나타났으니 이는 끝 날에 전 세계 기독교인들에게 그들의 갈 길을 보여준 표상인 것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생활을 했던가?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입을 것, 먹을 것 전부를 잊어버리고 일편단심 그만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생사를 초월하고 체면을 생각하지 않고 따르던 그녀의 행로는 끝 날의 성도들이 걸어야 할 노정이었던 것입니다.
만일 지금도 이 땅 위에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심정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있을진대 그 사람의 눈에는 하나님의 6천년 섭리에 어린 눈물이 감돌 것이요, 하늘 앞에 무한히 빚진 자신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4-258~259, 1958.0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