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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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죄악의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

종교 경전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회개하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예수께서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며,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며, 백성 가운데 모든 징벌과 모든 아픔을 고쳐 주셨다.
마태복음 4.17, 23 (기독교)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
디모데전서 1.15 (기독교)

예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6 (기독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은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를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편히 쉬게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멍에는 메기 편하고 내가 너희에게 지우는 짐은 가볍다.
마태복음 11.28-30 (기독교)

예수께서 그 집에서 식사를 하시게 되었는데 많은 세리와 죄인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한 식탁에 앉게 되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들의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합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들으시고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너희는 가서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요 희생제물이 아니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오지 않았고 죄인을 부르러 왔다.”
마태복음 9.10-13 (기독교)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삯군은 목자가 아니요 양들도 자기 양이 아니기 때문에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난다. 그러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양떼들을 흩어버린다. 그가 달아나는 것은 삯군이어서 양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선한 목자다. 나는 내 양을 알고 내 양은 나를 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과 같다. 나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 내게는 이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 나는 그 양들도 우리 안으로 인도해야 하겠다. 그리하면 그 양들도 내 음성을 듣고 마침내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 아래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 10.11-16 (기독교)

말씀 선집

예수님의 생활은 전부 자신의 책임과 사명을 완수하는 생활이었습니다. 그는 영원히 남아질 수 있는 책임을 땅 위에 완수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30여 평생의 생애는 영원불변의 실적, 책임을 다한 실적을 이 땅위에 이루어 놓은 생애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믿음의 복음이, 남아 있는 이상 그의 생애도 남아질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일대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역사적인 면에서도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4천년 동안 역사해 오신 뜻에 대해서도 홀로 책임을 졌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하나님의 책임을 대신하여 나서는 이가 이 땅 위에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1-37, 1956.05.16)

우주적인 의문을 해명해 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오셔야 했던 것이고, 해결되지 않은 인간들의 죄를 해결해 주기 위해 예수님은 오셔야 했던 것이며, 사망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예수님은 오셔야 했던 것입니다.
인류의 이러한 의문과 사망과 죄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4천년 역사과정에 오셨던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위해 진실된 생활을 하신 분입니다. 자기를 초월하여 우주적인 의심을 해명하기 위해 노력하셨고, 자기 일신의 영광을 초월하여 우주의 영광을 위하여 수고하셨으며, 자기의 모든 것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무한히 희생하고 가셨던 것입니다.
그런 일관된 마음과 생활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역사를 대표하여 하늘 앞에 제일의 선봉자로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역사적인 의심의 장벽을 헤치고 나서서 자신 있게 ‘나를 믿으라!’고 외치셨던 것입니다.
(3-14, 1957.09.08)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아버지를 찾아갈 자가 없다.’ 이것이 얼마나 당당합니까? '나는 길이요' 하는 그 길이 무슨 길입니까? 좁은 길입니까, 큰 탄탄대로입니까? 그리고 ‘나는 진리’라고 했는데, 그것이 어떤 진리입니까? 답답한 진리입니까? 모든 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전부 환영하고, 모든 것이 좋다고 하고, 모든 것의 잼대가 될 수 있다고 해야 됩니다. 그리고 ‘나는 생명’이라고 할 때, 죽어서 시들어 가는 생명입니까?, 발전하는 생명입니까? 그것을 어떤 곳에서 환영을 해야 됩니까? 낮고자 하는 자는 높아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106-13, 1979.11.04)

이상세계니 혹은 하나의 통일세계니 하는 것은 미완성한 상태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무지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성한 분, 완전히 아는 한 분을 이스라엘에 보내어 그 나라 사람들과 접촉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메시아를 보내 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삼은 주권 국가 형성은 예수님을 중심삼고 시작해야 되고, 예수님과 그 나라 백성이 완전히 하나 되어야 가능합니다. 즉, 메시아를 모시어 미완성한 개인이 완성되는 수속과 가정이 완성되는 수속과, 민족, 국가가 완성되는 수속을 전부 예수님의 뜻을 받아서 일체화시켜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를 통해서 메시아를 맞은 이스라엘 민족은 이스라엘 민족 자체를 위해서 보내신 것이기 보다도 메시아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 되게 하여 세계를 구원하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54-41, 1972.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