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인류를 위해 흘린 예수의 눈물과 불신에 대한 애통, 믿음이 약한 수제자
종교 경전
마리아는 예수께서 계신 곳으로 와서 예수를 뵙고, 그 발아래 엎드려서 “주님, 주님이 여기에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마리아가 우는 것과 함께 따라온 유대 사람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이 비통하여 괴로워하셨다.
예수께서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하고 물으시니, 그들은 “주님, 와 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자 유대 사람들은 “보시오, 그가 얼마나 나사로를 사랑하였는가!” 하고 말하였다.
요한복음 11.32 - 36 (기독교)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했어야 하지만 이것들도 소홀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잔과 접시와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안은 탐욕과 방종으로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눈 먼 바리새파 사람들아! 먼저 잔속을 깨끗이 하여라.
그러면 그 겉도 깨끗하게 될 것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가 회칠한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그것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의롭게 보이지만, 속에는 위선과 불법이 가득하다.
마태복음 23.23-28 (기독교)
그들은 겟세마네라고 하는 곳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기도하는 동안에 너희는 여기에 앉아 있어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셨다. 예수께서는 두려워하며 괴로워하셨다.
그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머물러서 깨어 있어라.” 그러고서 조금 나아가서 땅에 엎드려서, 될 수만 있으면 이 시간이 자기에게서 비껴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바,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보시니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시몬아,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느냐?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하여라.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 예수께서 다시 떠나가서,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다시 와서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들은 졸려서 눈을 뜰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께 무슨 말로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예수께서 세 번째 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은 시간을 자고 쉬어라. 그 정도면 넉넉하다. 때가 왔다. 보아라, 인자는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마가복음 14.32-41 (기독교)
베드로가 안뜰 아래쪽에 있는데, 대제사장의 하녀 가운데 하나가 와서, 베드로가 불을 쬐고 있는 것을 보고, 그를 빤히 노려보고서 말하였다. “당신도 저 나사렛 사람 예수와 함께 다닌 사람이지요?” 그러자 베드로는 부인하여 말하기를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나는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다.” 하였다.
그리고 그는 바깥뜰로 나갔다. 그 하녀가 그를 보고서, 그 곁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말하기를. “이 사람은 예수와 한패입니다.” 하였다. 그러나 그는 다시 부인하였다. 조금 뒤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였다. “당신이 갈릴리 사람이니까 틀림없이 그들과 한패일 거요.”
그러나 베드로는 저주하고 맹세하여 말하기를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하였다. 그러자 곧 닭이 두 번째 울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께서 자기에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그 말씀이 생각나서 엎드려 울었다.
마가복음 14.66-72 (기독교)
말씀 선집
자기를 위하는 하나님이 참사랑을 가졌다고 말 할 수 있겠느냐? 자기를 없애 버리고 전체를 위하는 하나님이 참사랑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하나님이 오늘날 타락한 인간을 대해 가지고 울면서 찾아오는 하나님이 참된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좋아도 눈물이 나고 슬퍼도 눈물이 나지요? 그럼 ‘엉엉’ 울던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찾았다 할 때 ‘하하’ 하겠습니까, 어떻겠습니까?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렇게 찾으면서도 울고, 찾고 나서도 둘이 붙들고 ‘엉엉’ 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자리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겠습니까? 눈물 흘리고, 콧물 흘리고, 입물 흘리는 자리에서 눈물만 흘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침이 나오고 코가 나오고 눈물이 나와야 됩니다.
그렇게 한번 울어 봤습니까? 진짜 슬프게 울면 눈물 나오고 콧물 나오고 입물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울어 보지 않고는 슬픔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 다음엔 땀까지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번 울어보지 않았으면 참사랑을 찾지 못합니다.
(102-163~164, 1978.12.17)
하나님의 섭리는 이 사탄세계에서 전쟁하는 섭리입니다. 싸움하는 섭리입니다. 예수님도 가만히 잘 사는 유대교인들에게 와서 전쟁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독사의 자식’이니 ‘외식하는 사람’이니 했습니다. 전부 전쟁입니다.
아, 유대인들 잘 한다, 교법사들 잘 한다, 율법사들 잘한다고 칭찬해주고, 제사장들 다 훌륭하다, 그랬으면(예수님이) 죽었을까요? 마찬가지입니다. 무함마드나 공자 같은 사람들이 전부 그렇게 했으면 달라졌을 것입니다.
(95-276~277, 1977.12.11)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예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였습니다. 예비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이 반대하는 것이 슬픔이 아니요, 유대교 교인들이 반대하는 것이 슬픔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3년 동안이나 따랐던 제자, 그 사랑하는 제자들이 믿어야 할 때에 믿지 못하고, 증거해야 할 때에 증거하지 못하고, 싸워야 할 때 싸우지 못하고, 죽어야 할 때에 죽지 못했던 그 한 사실이 예수님에게 가장 큰 서러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3-142, 1957.10.18)
예수님을 끝까지 저버리지 않고 따른 자가 누구였던가. 예수님의 열두 사도가 아닙니다. 그 열두 사도 가운데 세 제자도 예수님을 끝까지 믿고 따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들에게 소개했고, 그 사랑을 실천하려고 하셨던 예수님이었지만 인간들과 사랑의 인연을 맺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천륜의 사랑의 말씀을 전하였고 사랑에 불타는 마음을 가지신 예수님 이었지만, 붙잡고 ‘내 아들아, 내 아버지!’ 하며 부자의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한 사람을 찾지 못하고 가셨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제자들은 졸고 있었지만 겟세마네 동산에서 밤을 세워가며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셨던 예수님의 그 심정과 사정을 여러분을 알아야 되겠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말씀이 좋다고 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2000년 전에 예수님은 사랑하려야 사랑할 데가 없었습니다.
(3-58, 1957.09.22)
예수님은 슬픈 30여년의 생애를 보냈사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3년 공생애가 있었으나 누가 그의 심정을 알았사오며, 누가 그의 사정을 알았사옵니까?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희로애락을 같이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하고 외로울 때 같이 외로워하며 스승이라고 모시던 제자들도 몰랐습니다.
스승이 죽음의 길을 갈 것을 염려하여 간곡한 심정으로 하늘을 붙들고 호소해야 할 제자들이 도리어 예수님이 누구인가 하고 반문하는 처지에 있었으니….
(7-45, 1959.07.12)
이 땅 위에 어느 누가 예수님의 마음을 알았사옵니까? 수심에 잠긴 그 모습을 보고 마음깊이 사무쳐 오는 하늘의 슬픔을 체휼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으니, 하늘은 이러한 인간들을 놓고 탄식하실 수밖에 없었음을 아옵니다.
하늘의 심정을 알아 ‘주여!’ 하고 부르는 제자 하나도 갖지 못한 예수님께서 의심으로 점철된 생애노정을 가셔야 했고, 또한 의심을 받으며 그 서글픈 생애의 종말을 맞아야 했던 슬픔을 이 시간 저희들이 마음으로 동정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께서 간곡한 하늘의 심정을 품고, 하늘 전체의 위업을 품고 인간을 찾아오셨으나 인간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자기들 멋대로 대하였고 배척할 대로 배척하였사옵나이다. 외로운 자리로 몰아넣을 대로 몰아넣었사옵니다.
그러나 슬픔에 잠기고 탄식의 자리를 여지없이 밟아 나오시면서도, 예수님은 그러한 인간들을 버리지 못하시고 생명의 동산을 향한 한길을 개척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끌고 겟세마네동산을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시는 예수님의 처참한 가슴 앞에, 믿음직한 제자 하나 없었던 서글픈 사정을 저희들이 알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이 하나님과 같이 사신 것을 알지 못하였던 제자들, 이런 제자들을 남겨 두고 한 생애를 종결지어야 할 입장에 있던 예수님의 심정, 생애의 전부를 인간을 위하여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생애의 결실을 보지 못하고 처절한 심정에 잠기어 하늘을 염려하시던 예수의 마음을, 저희들이 이 시간 동정할 줄 알게 허락하여 주시옵기를, 아버님,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나이다.
(5-137~138, 195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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