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그리스도의 열정과 십자가의 고뇌
종교 경전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꼭 붙들고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하면서 예수께 항의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기를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셨다.
마태복음 16.21-23 (기독교)
예수께서 늘 하시던 대로 밖으로 나가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도 예수를 따라 갔습니다. 그 곳에 이르러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후에 그들에게 돌을 던져 닿을 만 한 거리에 가셔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오면 내게서 이 잔을 걷어 가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무리 한 떼가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라는 자를 앞장세우고 나타났습니다. 그가 예수께 와서 입을 맞추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유다야, 너는 입맞춤으로 인자를 넘겨주려 하느냐?”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되어지는 사태를 보고 “주님, 우리가 검을 쓸까요?” 하고 말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대세사장의 종의 오른편 귀를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예수께서 “그만 두어라” 하고 말씀하시고 그 사람의 귀를 고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잡으러 온 대제사장들과 성전 수위대장들과 장로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검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왔으니 나를 강도로 보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서 너희와 함께 있었으나 너희가 내게 손을 대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너희의 때요 어두움이 지배하는 때가 되었다” 그 때에 그들이 예수를 붙들어 끌고 대제사장의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예수를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예수를 모욕하고 때리며 눈을 가리고 물었습니다. “자, 그대를 치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맞혀 보시오” 그들은 계속하여 예수께 무례한 짓을 했습니다.
새벽에 백성의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모여 예수를 그들의 의회로 끌고 가서 말했습니다. “네가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할지라도 너희가 믿지 않을 것이요, 내가 물을지라도 너희가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인자가 전능하신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게 될 것이다.”
그 때 모든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냐?”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누구라는 것은 너희가 말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가 직접 그의 입으로 나오는 말을 들었으니 이 이상 무슨 증거가 필요하겠소?” 하고 말했습니다.
온 무리가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 앞에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예수를 고소하여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 백성을 그릇되게 하여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반대하고, 자칭 그리스도 왕이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고 증언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예수께 물었습니다. “네가 말한 대로다” 하고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사형에 처하려고 끌고 나가다가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는 구레네 사람 시몬을 붙들어 억지로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를 따르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큰 무리를 이루어 예수를 따라가고 있었는데, 그 중에는 여자들도 있었다. 그 여자들은 그를 생각하여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다. 예수께서는 여자들을 돌아다보시고 말씀하셨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자녀를 위하여 울어라.
보아라. 사람들이 ‘임신하지 못하는 여인과, 아기를 낳아 보지 못한 태와 젖을 먹여 본 적이 없는 가슴이 복되다’ 하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 그 때에 사람들이 산에다 대고 ‘우리 위에 무너져 내려라’ 하며 언덕에다 대고 ‘우리를 덮어 버려라’ 하고 말할 것이다. 나무가 푸른 계절에도 사람들이 이렇게 하거늘 하물며 나무가 마른 계절에야 무슨 일이 벌어지겠느냐?”
다른 죄수 두 사람도 사형장으로 예수와 함께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해골이라는 곳에 이르러 예수를 십자가에 달고 함께 끌려간 죄수도 하나는 그의 오른편에, 하나는 그의 왼편에 달았습니다.
그 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옵니다.” 그들은 예수의 옷을 제비뽑아 자기들끼리 나누었습니다. 군중은 서서 쳐다보고 있었고 지도자들은 조롱하며 “이 사람이 남을 구원했으니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리스도라면 자기도 구원하게 하라” 하고 말했습니다.
군인들도 또한 예수를 희롱하면서 가까이 가서 신 포도주를 드리고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거든 자기 자신을 구원하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예수의 머리 위에 “이 사람은 유대인의 왕이다”라고 쓴 패가 있었습니다.
예수와 함께 달린 죄수 중의 하나는 “당신이 그리스도가 아니요? 당신 자신을 구원하고 또 우리를 구원하시오” 하고 예수를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죄수는 날카롭게 반박했습니다. “너는 하나님이 두렵지 않느냐?”
그러고 나서 말했습니다. “예수님, 당신이 당신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에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게 될 것이다.” 낮 열두시쯤 되었을 때에 어두움이 온 땅을 덮어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해가 빛을 잃고 성전 휘장 한가운데가 찢어졌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옵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숨을 거두셨습니다.
누가복음 22.39-23.46 (기독교)
세 시쯤에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시기를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 하셨다. 그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는 뜻이다.
마태복음 27.46 (기독교)
말씀 선집
예수께서 죽으러 왔다는 것이 본래 하나님의 예정 가운데서 되어진 것이냐, 돌변지사냐 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됩니다. 돌변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약성경의 예수님 말씀을 통해서 알아봅시다. 누가복음 9장 30절을 보면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 중에 나타나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을 말씀할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결정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2절을 보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돌아가실 것을 말하니 베드로가 예수께 ‘주여 그러지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할 때,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예수가 죽으러 온 거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그 말이 죽으러 온 메시아의 말인데 죽지 말라고 하니, 베드로에게 그렇게 지적한 것이 아니냐며 죽으러 왔다고 주장합니다.
여러분, 그것은 이미 변화산상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고 십자가에 돌아갈 것을 결정한 후의 말씀인 것을 여러분이 분명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죽으러 왔다면 가룟 유다를 두둔했어야지, 너는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는 그런 말은 모순이 아닙니까?
또 여러분,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했는데 이게 무슨 말입니까? 죽으러 왔다면 그런 기도를 할 수가 없다 이겁니다. 만일 죽으러 왔다면 왜 하나님 4천 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민족을 그렇게 고생시킨 터전 위에 보냈을까요? 강도들한테 보내 주면 대번에 잡아 죽일 텐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육과 영을 중심삼고 영적 세계는 물론이지만 실체세계에서도 하나님의 왕권을 회복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나라의 발판이 없어지고 유대교의 발판이 없어져, 예수님 혼자 할 수 없으니 십자가에 죽어서라도 제2차의 소망의 길을 개척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나라가 반대하고 교회가 반대하니 십자가에 가는 길밖에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도 불가피하게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놓지 않을 수 없었다는 걸 여러분은 알아야 됩니다.
(73-218~220, 1974.09.18)
예수님의 길은 한결같이 찢기고 몰리고 쓰러지는, 십자가를 진 처참한 걸음이었습니다. 그것뿐이었습니까? 무모한 악당들이 채찍을 들어 내모는 처지에 몰리기도 했습니다. 이런 자리에서 만일 예수가 엘리야와 같은 사람이었다면, 그도 “아버지여, 나만 남았나이다.”라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제자를 뒤에 놓고 기도할 때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자기의 사정도 딱 하나, 자기 일신은 민족의 제물이요, 인류의 제물이요, 천륜의 제물인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아신 예수님은 자신의 슬픔도 슬픔이거니와 하늘의 슬픔이 얼마나 클 것인가를 염려하는 마음이 더 컸다는 것입니다. 민족을 위해 나타났으나 민족 앞에 배반 받는 자신을 바라보시는 하늘의 슬픔이 얼마나 클 것인가 하는 것을 더 염려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황태자요, 만 우주의 주인공이요, 메시아였습니다. 그런 예수가 ‘처참한 십자가의 운명이 웬일입니까?’ 하고 탄식하려면 이 우주를 동원하여 탄식할 수도 있었으나 탄식할 수 없는 자기 자신임이 느껴졌기 때문에, 몰리는 자리에 서게 된 것을 오히려 하늘 앞에 면목 없게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교단을 규합시키고 민족을 규합시켜 하늘의 왕국을 건설하고 세계를 아버지 품에 안겨드려야 할 책임을 짊어졌던 예수님은, 그 사명을 뒤로 미루고 십자가의 길을 가게 될 때 원망할 어떤 무엇도 느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잔을 피하게 하옵소서’ 하고 기도하신 것도 자기 일신이 죽는 것이 서러워서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일신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민족의 서러움과 하늘의 서러움이 가중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렇게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쓰러지면 후대의 세계 인류 앞에 가중될 십자가가 남아지고, 그로 인해 슬픔의 역사가 끝나지 않을 것을 아셨습니다. 골고다의 길이 끝나지 않을 것을 아셨습니다. 죽음의 길이 끝나지 않을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골고다의 길을 가면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도 골고다의 길을 걷지 않으면 안 될 것을 아셨습니다. 십자가뿐만 아니라 더 어려운 길이 남아질 것을 아신 예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양손 양발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가 창에 찔려 피를 흘리는 자리, 가시 면류관을 쓰는 자리에 선다하더라도 이것이 자기에게 그쳐지지 않을 것을 아신 예수님은 하늘을 향하여 “다 이루었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은 인간 세상에서 십자가의 길이 다 끝났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를 위하여 울며 염려하는 마음의 호소와 하늘과 통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수많은 선지선열들이 하늘 앞에 저질렀던 모든 잘못을 짊어지고, 하늘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산 제물로서 하늘 앞에 바쳤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자신은 죽어가면서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장에 노아 때 이상의 심판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예수님이 민족을 붙들고 죽고, 교단을 붙들고 죽고, 십자가를 붙들고 죽은 연고로, 인간을 버리지 못하시고 붙들어 나오고 계신 것입니다. 이런 심적인 인연이 후대의 인간, 남아진 이스라엘 민족과 맺어져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배반하는 후대의 교단과 인간들을 버리지 못하고 붙들어 나오고 계십니다.
(378-314, 2002.05.21)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향해 가면서 심히 지쳤을 때, 그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고 간 구레네 시몬 같은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택함 받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에도 이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이방사람인 구레네 시몬만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였기 때문에 기독교는 이스라엘의 종교가 되지 못하고, 이방의 종교가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찾아 나가겠다는 여러분은 꿈에서라도 구레네 시몬과 같은 행동을 하겠다는 각오가 서 있어야 합니다. 구레네 시몬은 변명할 수도 있었고 반박할 수도 있었으나 묵묵히 순응하여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오늘 여러분도 이와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심정은 어떠했습니까? 3년 동안 희로애락을 같이한 사도들은 온데간데없고, 생각지 않았던 이방의 구레네 시몬이 당신을 대신하여 처참한 입장에 서게 될 때, 이를 바라보는 예수의 마음은 민망함이 컸을 것이고, 슬픔에 슬픔을 더했을 것입니다.
만일 12사도 중에 어느 누구라도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사람이 있었다면, 예수님은 그를 바라보며 죽음의 고난도 잊고 도리어 그를 동정하면서 당신의 아픔을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여 예수님은 슬픔에 슬픔을 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2-275, 1957.06.16)
예수님은 로마 병정이 창으로 자기의 옆구리를 찔렀어도 ‘저들을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내가 저들 대신해 죽어 갑니다. 저들 대신해 희생하겠습니다.’ 하는 정신을 가지고 완전히 참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새로운 세계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역사상에 없던 새로운 세계가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역사를 보더라도 역사상에 모든 원수는 원수로 갚으라고 가르쳐 주었지, 원수를 사랑으로 갚으라고 선언한 것은 단 한 분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뿐이었습니다. 그것이 위대한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위대한가 하는 사실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 하나님이 바라는 세계가 거기서부터 샘솟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역사시대에 거기서부터 샘솟기 시작한 것입니다.
(130-232~233, 1984.01.29)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갔을 때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원수의 아들딸이 자기의 독생자를 잡아 죽이는 판국인데도 그들을 원수시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잡아 죽이는 입장에서도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넘어가야 하는 하나님의 심적인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예수님도 하나님과 아담의 기준을 넘어가려니, 하나님이 사탄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예수님 자신도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로마병정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이것을 패스했기 때문에 사탄이 분립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아담이 사탄을 사랑했다는 전통적인 정신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참소하지 못하고 분리된 것입니다. 이럼으로 말미암아 기독교를 중심삼고 사탄분립 역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언제나 개인적, 가정적으로 사탄 편을 사랑했다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안 됩니다. 죽는 자리에 들어가더라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따라서 기도해 줄 수 있는 놀음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복귀되어 나온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순교하는 그 자리에서 예수와 같은 기도를 해야 합니다. ‘저와 같은 자들을, 하나님이여, 구해 주십시오!’라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아담 해와가 천사장을 사랑해야 할 원칙이 있기 때문에, 그 원리 원칙 기반을 완전히 복귀하기 위해서는 타락한 사탄을 본래 천사장과 같은 자리에서 사랑했다는 입장, 그런 자격을 가져야 천국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244-154~155, 1993.02.01)
예수님은 하나님의 외아들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세계에서 가장 몰리는 입장에 서셨던가? 또 하나님이 모른다 하는 입장에 서셨던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하면서 하늘을 향하여 호소하셨던가? 이것은 인간이 천륜을 배반했기 때문에, 다시 말해 개인적으로 아담이 배반한 것을 탕감복귀해야 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개인적으로 버림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버림받았지만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하였습니다. 자신 앞에 어떠한 죽음과 고생이 닥쳐오더라도 그것을 소화시키고 하나님과 하나 될 수 있는 이런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원수들도 그를 지배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이 배척하고 민족이 배척하여 죽음의 자리까지 나아가서도 변치 않음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부활의 문이 열렸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여러분은 하늘이 여러분을 배척하는 일이 있다 할지라도 끝까지 아버지를 붙들고 섬길 수 있는 각오를 지녀야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남기신 부활의 은사권내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되겠습니다.
(4-114~145, 1958.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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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가족의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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